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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Oct 08. 2024

벽이 뜯어졌다?!

사건사고도 정말 가지각색.

  문틀 철거를 하는 날이었다. 30년 정도 된 집이기에 문틀도 많이 낡았고 욕실의 문짝과 문틀은 물이 자주 닿다 보니 불어서 미관적으로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교체를 계획했고 업체에게 상담도 받았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했듯 업체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우리가 직접 해야겠다는 결론에 달했다. 그 당시에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서 홧김에 그런 결론을 내렸지만 내린 후에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정말 좋은 선택인지 다른 더 좋은 방법은 없는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생각해 봤던 몇 가지 방안을 적어볼까 한다.


  첫 번째 방안은 업체에 맡기는 방법. 우선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철거는 우리가 해야 한다.

  두 번째 방안은 문틀은 철거하지 않고 문 짝만 바꾸는 방법. 가격은 문틀의 가격과 시공비가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문틀은 하지 못하며 기존 문틀을 안고 가야 하는 수고가 들어간다.

  세 번째 방안은 문틀을 리폼하는 방법. 찾아보니 우리가 하고 싶은 문 틀은 시공되어 있는 기존 문 틀 종류에 따라 리폼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집은 그 종류에 포함되지 못했다. 

  네 번째 방안은 문틀 철거부터 시공까지 우리가 직접 하는 방법. 가격은 두 번째 방안보다 많이 나오고 수고도 많이 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문틀을 첫 번째 방안보다 낮은 금액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마감 퀄리티는 장담하지 못한다.


  우리는 문틀 철거에 이렇게나 열심히 고민을 했다. 이유는 하고 싶은 문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틀을 하려면 기존에 있는 문틀을 철거해야만 했다. 생각해 본 방안들 중에 '수고스러워서' '힘들어서' 같은 느낌의 방안들은 오히려 나에게 더 불을 지폈다. 이유는 힘든 게 싫거나 수고스러운 게 싫었더라면 애초에 집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작은 했고 마감이야 어떻게 나오던 우리가 직접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 나는 네 번째 방안이 제일 좋았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자신감 넘치게 말한 것 같고 아내도 근심걱정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아내는 내가 하던 누가 하던 별 상관이 없었고 해보고 싶으면 해 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 모습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아닌 "내가 할게!"라고 말하지만 동공이 흔들리고 언제든지 "하.. 아냐 그냥 맡기자.. 자신 없어"라고 말하며 마음이 바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결정 내지 못하고 주저하면서도 나는 작은방의 문 틀에 톱을 집어넣고 잘라내고 있었다. 그 톱이 닿는 순간 문 짝만 바꾸는 두 번째 방법과 리폼을 하는 세 번째 방법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철거는 그렇게 진행되었고 이제 우리가 원하는 문틀이 어떤 건지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문틀은 어떠한 시기쯤부터 사람들이 얇고 간결한 선을 선호하면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휴대폰의 화면도 TV의 화면도 베젤(화면의 테두리)이 얇아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렇게 세상이 '얇게 더 얇게' '간결하게 더 간결하게'를 말하면서 집 안의 문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당장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얇은 베젤이 달려서 나왔고 두꺼운 베젤은 촌스럽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 버리게 되었다(물론 나에게만). 그래서 우리는 한창 유행을 달리고 있는 '9mm 문선'이라 불리는 문틀이 하고 싶었다. '9mm 문선'을 설명하면 이렇다. 옛날 대부분의(거의 모든) 문틀은 좌우에 약 3cm 정도 되는 두께의 나무가 붙어있다. 그리고 그 문틀에 반정도 걸친 정도로 '문선 몰딩'이 덮어져 있다. 이처럼 문틀과 몰딩의 합은 약 4cm~5cm 정도가 되며 이는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보이는 너비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9mm 문선'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문틀과 몰딩의 총합이 9mm인 형태다. 총합이라고 적었지만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3cm 정도 되는 문틀은 도배지에 덮어지고 9mm 두께의 문선 몰딩만 보이는 형태인 것이다. 


  톱질을 하고 난 후 문틀을 뜯을 때도 창틀을 뜯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문틀 좌우의 가운데쯤을 반으로 자른 후 밀고 당겨 박혀있는 못을 빼내는 방식이었다. 문틀에 붙어있는 몰딩을 빼내고 문틀을 잘랐다. 빠루를 사용해서 조금씩 당겨냈고 당겨낸 양 문틀을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빼냈다.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나도 과감하게 힘껏 잡아 흔들었다. 꽈지직 꽈지직 소리를 내며 문틀에 박혀있는 못들이 빠져나오고 문틀에 붙어있던 콘크리트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그 너머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눈에 들어와 버렸다.

 

  그건 다름 아닌 벽에 금이 간 모습이었다. 그 금은 그저 한없이 얇은 실금이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나 얇은 실금이지만 당장 손으로 뜯으면 떨어지겠구나'


  금이 간 부분은 안방입구의 좌측 상단 모퉁이. 처음 눈에 들어왔을 때는 '이게 뭐야' 했지만 곧장 '원래 있었던 걸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금은 누가 봐도 지금 내가 문틀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가 생긴 금이었다. 문틀을 떼어내면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더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방의 바깥에서 작업을 하다가 금이 간 모습을 보고는 반대편에서 해야겠다며 방 안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했다. 방 안에서 천천히 조심스레 문틀을 복도 쪽으로 밀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조심스러움은 너무나 의미 없다는 듯이 금이 간 벽을 힘차게 밀어내고야 말았다. 떨어져 나온 벽 덩어리를 보면서 문 틀이 저 부분에 끼어있었던 것을 느꼈고 어떻게 하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금이 쩍쩍 가있던 벽은 결국 내 손에 의해서 탈락되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다. 벽 조각은 떨어져 나왔고 이왕 떨어진 거 조각들을 다 떼어내고 빼내지 못한 문틀을 마저 빼냈다. 속에서는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고 나는 속으로 자책하기에 바빴다. 괜히 직접 한다 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화가 나서 떼어낸 조각들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화난다고 아랫집에 소음을 전해줄 수는 없었다. 떼어낸 조각들은 조심히 모아서 폐기물을 모아둔 거실 중앙에 살포시 기대어 뒀다. 그렇게 안방 작은방 입구방 화장실의 모든 문틀을 제거했고 목재 폐기물에 대한 정리를 진행했다.

  목재 폐기물은 아내의 친정에 가져다 주기로 했다. 아내의 친정집에는 화목난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당에는 가마솥이 올려져 있는 아궁이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용할 땔감으로 집에서 철거를 한 후 남은 목재를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비록 나무조각 몇 개지만 겨울에는 작은 땔감 하나도 모두 돈이다. 나는 몰딩이나 문틀을 철거해서 주방 쪽으로 모았다. 모으면 아내는 박혀있는 못 들을 빼냈고 나는 옆에서 톱으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길이대로 재단을 했다. 그렇게 둘은 바쁘게 일을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저 떨어져 나온 벽을 마감할 것인가'라는 주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감되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미장이 되어있어서 시멘트를 사서 미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미장을 해 본 적도 없거니와 한다 하더라도 실력이 형편없을 것임을 장담했다. 그래서 다른 생각도 했다. '어차피 떨어진 조각들이니 이 벽면에 있는 미장면을 다 뜯어버릴까?' 그러면 미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욕실벽과 마감면이 맞지 않았다. 결국엔 다시 원상복구 시켜야 한다는 결론만 남았다. 못을 박는다 하더라도 미장되어 있던 조각들이라 구조력도 약해서 못을 박는다거나 나사를 박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한 채 문틀을 분해하고 못을 빼내고 나무 자르기를 반복했다.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갈 때쯤 머릿속에 별똥별 같은 빛이 한줄기 스쳐 지나갔다. '박을 수 없다면 붙이면 되지 않는가!' 마감이야 어차피 도배지가 둘러질 예정이고 도배지가 붙기 전에는 부직포를 붙인다. 부직포는 미세한 그물 형태의 비닐처럼 생겼고 도배하시는 분들은 초배지라고도 부른다. 이는 지지력이 아주 좋기 때문에 혹여나 나중에 떨어지더라도 부직포가 잡아줄 수 있기에 도배하기 전까지만 버텨주면 되었다. 곧바로 나는 미리 구매해 둔 접착용 실리콘과 고구망치, 그리고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먼지를 쓸어 줄 작은 브러시를 챙겼다.


  브러시로 먼저 자잘한 먼지들을 제거해 줬다. 아무래도 접착은 붙이는 면에 먼지가 없어야 잘 붙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먼지가 있는 상태로 테이프를 붙이면 맥없이 다시 떨어지는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브러시질을 한 뒤 라인을 따라 붙을 면에 접착용 실리콘을 도포해 줬다. 그 후 무심하지만 섬세하게 떨어진 부분의 잔해를 벽에 '턱'하고 붙였다. 생각보다 견고하게 붙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고 브러시로 쓸고 실리콘을 바르고 조각을 붙이는 과정을 서너 번 정도 진행했다.


 결과는?

  대만족.


  이제 이 접착이 도배하기 전까지만 버텨주면 부직포로 벽을 감싸게 될 것이고 그럼 밀려 나올 수 없기에 벽이 다시 탈락될 위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한 소감으로는 손으로 떼어내려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폐목재들과 현장을 정리한 뒤 우리는 일찍 현장에서 나섰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마감재 구경. 여기서 말하는 마감재는 욕실에 들어갈 위생기구들 등이다. 양변기라던지 세면대라던지 그런 위생기구들. 공사가 다 끝난 후에 사도 되겠지만 내가 화장실 작업을 하려면 우리가 사용할 기구들의 사이즈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양변기의 상부 뚜껑을 여는데 불편함이 없는 젠다이를 만들 수 있고 샤워공간과 세면공간 양변기공간의 분할을 해서 어디를 좀 넓힐지 어디를 좀 줄일지 들을 계획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KCC에서 운영하는 '홈씨씨'라는 곳이다. 이곳은 인테리어 용품들도 판매하고 각종 업체들도 입점해 있으며 일반 소비자가 다가가기 쉽게 마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홈씨씨'에 들려 마감에 대한 비용이나 형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한참이나 머물렀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오면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이유는 정말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를 덧붙이자면 딱 봐도 오래된 재고 같은 물건들이 있었는데 심지어 가격까지 비쌌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홈씨씨를 나오며 이곳에서 살 일은 없겠구나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홈씨씨는 정말 급할 때 혹은 가격이나 디자인이 상관없을 때 구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디자인이 괜찮고 가격이 저렴하고 종류가 많은 그런 곳을 찾으려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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