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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Nov 05. 2024

아내의 별명

열심히 일한 당신, 놀림받아라.

  얼마 전 현관 가벽을 시공했었다. 가벽을 목공벽으로 제작 후에 마감을 위해 겉에 석고보드를 시공했었는데 그때 아내에게 타카 사용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아내는 그때 잠깐이지만 석고보드에 대한 낯가림이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이렇게 느낀 이유는 아내의 한마디를 듣고 난 후였다.


 이제 타일을 붙일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타일을 붙이기 전에는 해둬야 할 작업들이 너무나 많다. 타일이 최종마감재이기도 한 이유도 있지만 마감을 잡기 위한 이유도 있다. 타일을 하기 전에는 가장 먼저 설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방수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간혹 '타일을 새로 한다'에 대해서 "타일 새로 하면 방수 걱정 없겠네"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타일 자체는 흡수율도 낮아 흡수되기 전에 흘러내려가거나 마르기 때문에 방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일과 타일 사이를 이어주는 줄눈은 '방수가 된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이야기하자면 '물에 강하다'정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일 공정 전에 방수는 확실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타일이 선두 방어선이라면 방수는 최종 방어선인 셈이다. 그리고 타일을 붙이기 위해서는 문틀이 설치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존 벽에서 타일이 얼마나 돌출이 되는지 혹은 마감선을 어느 정도로 잡을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문틀을 설치하기 위해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철거당시 욕실 문틀을 떼어냈는데 문틀 상부에는 조적벽돌을 쌓아서 '붙여'둔 모습이 있었다. 문틀을 철거하기 위해 충격을 주고 흔들면서 붙어있던 조적벽돌들에 균열이 갔고 이내 붙어있던 조적 벽돌들이 한 덩어리째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혹여나 놓쳐 나중이 되었을 때 떨어지거나 깨지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현재 조적벽돌이 떨어지고 난 빈 공간을 남아있는 목재로 골조를 세워 둔 상태다. 그걸 아내가 보더니 "여기도 석고보드 붙여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그 말에는 아내의 열정과 흥미와 호기심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임무를 하나 던져주게 됐다.


  "석고보드 잘라서 직접 해볼래?" 아내는 문틀 미장때와 마찬가지로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지만 그 눈치 속에는 잘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들끓고 있음이 확실하게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려줄 테니 직접 해보라는 나의 제안에 아내의 석고보드 임무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내가 알려준 것은 치수 측정하기. 석고보드를 재단하는 방법을 알더라도 어떤 모양을 어떤 크기로 자를지 모른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렇기에 줄자 잡는 법부터 기준을 잡는 법이나 어느 정도 여유를 줄 수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알려줬다. 그리고 모양을 그려서 치수를 기입했다. 첫 시도에는 사각형 형태가 자르고 시공하기 좋았겠지만 항상 처음이 쉽다는 생각은 접으라는 듯 아내에게 다가온 형태는 'ㄴ'자 모양이었다.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목작업 석고보드 시공


  적당한 사이즈의 자투리 석고보드를 바닥에 눕힌 뒤 실측했던 형태를 조심스럽게 그려나갔다. 그 후 직선을 그을 수 있을만한 도구를 들고(우리는 수평대를 대고 그었다. 굳이 수평대가 아니더라도 목재를 사용해도 되고 쇠자를 사용해도 되고 직선만 그을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마킹되어 있는 꼭짓점들을 하나씩 이어나갔다. 실측을 하면서 원했던 형태가 나온다면 줄을 그었던 그 행동 그대로 칼을 들고 잘라줬다. 석고보드는 양 면이 종이로 되어 있는데 그 종이에 칼집을 내주면 내부의 석고는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형태를 잡기에 편하다. 요리조리 잘 잘라내고 정성스레 칼질 톱질을 했다. 아내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완성된 석고보드를 들고 욕실 앞 사다리 위에 발을 올렸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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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게도 실패. 첫 시도라 두려움이 컸는지 여유를 너무 많이 준 탓에 빈 공간이 너무 많았다. 나는 실패한 석고보드를 댄 후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줬다. '여기는 조금 더 하고, 여기는 조금 빼주고' 등등.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들었지만 아내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이라는 게 말하지 않아도 뿜어 나오듯 해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실패로 좌절을 맛보았지만 이 실패는 아내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리라. 그렇게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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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내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 혼자 진행했다. 받았던 피드백과 다시 실측한 정보들을 가지고 또 다른 형태를 석고보드에 그려나갔다. 두 번째 하는 일이라 그런지 첫 번째보다 훨씬 능숙하게 빠르게 진행됐다. 과연 두 번째 도전의 결과는?


  대성공! 완전히 '딱' 맞진 않았지만 여유도 원했던 만큼 나왔고 좁거나 넓은 곳은 없었다. 아내에게 타카를 손에 쥐어주니 '타카타카'하는 소리와 함께 고정까지 완료했다. 이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이 내 손만 타는 것이 아내의 손도 함께 타고 있다는 모습에 나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아까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했을 때 아내는 "난 실패했어..."라며 잔뜩 우울한 모습을 보였는데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작 석고보드 하나 자르고 붙이는 건데 뭘 그러냐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누구나 실패는 힘든 법 아니겠는가. 두 번째라도 성공해서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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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석고보드를 붙인 후 나도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아내가 방에서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댔다. 나는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리고 아내는 나에게 조각 하나를 보여줬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석고보드 조각인데 이걸 왜 보여주나 싶었는데 아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게 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직접 답을 보여주려는 듯 사다리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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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재밌는지 슬로모션을 하며 가져다 댄 곳은 철거를 하면서 끝이 깨져버린 석고보드가 있는 곳이었다. 아내는 혼자서 이걸 모양대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조각을 완전히 붙였을 때는 엄청난 희열이 분위기를 감쌌다. 직선도 아닌 저 곡선을 대보고 갈아내고를 반복하면서 만든 작품이었다. 내가 혼자서 뚝딱거리는 동안 이걸 하고 있었을 아내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너무 웃겼던 순간이었다. 천장에 올려붙인 석고보드는 타카로 박지 않았는데도 멀쩡히 붙어있는 모습에 "얼마나 완벽하게 만들었길래 떨어지지도 않네"라며 농담과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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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석고보드 하나로 기분이 좋아졌고 나는 현장일에 재미를 붙인 아내에게 별명 하나를 지어줬다.


별명은 이렇게 지었다. '내노자 지 씨'

아내의 성 씨는 '지'이며 내노자는 외노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말한다면 내노자는 '내국인 노동자'를 나타내는 말이다. 아내는 별명이 그게 뭐냐며 말했지만 내심 마음에 들어 보였다.


  나는 지금도 꾸준히 '내노자 지 씨'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내노자 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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