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티지옥에 온 걸 환영해.
일의 순서나 시공방법은 지켜지는 게 어렵지만 정말 중요하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주방에 타일을 붙인 후 다음날 가장 먼저 진행한 작업은 타일 클립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타일 클립은 타일과 타일 사이의 단차를 평탄하게 맞춰주기 위해서 사용을 한다. 간격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는 스페이서도 있고 옛날(부자재가 나오기 전 시기)에는 눈대중으로 혹은 실을 띄워 맞췄다면 요즘엔 이런 부자재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어서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쉽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타일을 붙일 수 있다.
솔직히 주방 타일을 붙이는데 평탄클립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주방은 타일을 붙이는 범위가 그리 넓다거나 양이 많다거나 단차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탄 클립도 어느 정도 바탕면의 단차를 맞춘 상태에서 사용해야 하기에 평탄클립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바탕면이라면 조금씩 눌러서 단차를 맞추기에도 충분하다. 내가 주방 타일을 붙이면서 평탄클립을 사용한 이유는 단 하나다. 욕실 타일공사를 대비한 연습. 욕실은 벽이나 바닥 가릴 거 없이 물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단차를 잘 맞춰줘야 한다. 벽도 물이 흐르기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곳은 바닥이다. 바닥 타일에 단차가 생겨버리면 먼지가 낀다거나 물이 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고였을 때 바닥 방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누수의 요소가 생기게 된다.
타일 클립은 고무망치를 들고 톡톡 때려주며 제거를 했다. 평탄클립은 고리와 쐐기 두 부분이 있는데 고리는 일회성 사용으로 제거하면서 깨진다. 그리고 남은 쐐기는 다음에 재사용할 수 있다. 쐐기가 끼워진 수직방향으로 충격을 가하면 고리 부분이 깨지면서 토도독하는 소리가 난다. 이 소리가 은근 중독성 있는 소리라서 제거하는데 불멍 하듯 멍하니 집중해서 제거를 했다. 제거보다 힘들었던 건 때리면서 여기저기 나뒹굴어 버린 쐐기를 줍는 일이었다. 재사용을 해야 하니 하나하나 주어 담아 보관을 했다. (처음 포장지를 뜯을 때부터 보관을 생각해서 막 뜯지 않고 최상단을 조심스럽게 일자로 오려서 개봉하는 게 좋다.)
타일 클립을 제거한 후에는 주방 창 상단에 퍼티를 했다. 우리 집의 주방벽은 'ㄱ'자 모양이라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도 'ㄱ'자 형태로 상부장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주방이 너무 답답해 보일까 싶어 한쪽 벽면만 상부장을 하기로 했다. 수납공간이 너무 좁으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ㄱ'자로 하면 코너 부분의 수납이 효율성을 많이 잃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한 칸 정도 줄어드는 것이니 있어봐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나는 짐을 쌓지 말자라는 주의여서 수납함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효율적인 공간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수납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짐이 많아지고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르는 그런 불필요한 짐들이 점점 많아진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쌓아두는 것도 폐기물이 많이 발생되는 일이기에 조심하는 편이다. (환경에 대해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노력하려 하는 편이다. 는 내가 찔려서 적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상부장이 들어가지 않을 공간에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페인트 칠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 있다. 울퉁불퉁한 바탕면을 잡아주는 공정인 '퍼티'라는 공정이다. 인테리어 용어로 '빠데를 한다.'라고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퍼티(Putty)가 맞다.(노다지도 이렇게 변형된 말이겠지.?) 창문 상부의 벽 중 제일 좌측은 인덕션 후드가 들어갈 예정이라 크게 손보지 않아도 되고 제일 우측은 상부장의 돌출 공간이기에 벽의 중앙을 기준으로 퍼티를 진행했다. 역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그냥 펼쳐서 펴 바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랬듯 생각보다 면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퍼티에 사용하는 헤라가 있는데 일정 방향으로 긁어 내릴 때마다 자꾸 끝자락에 줄이 생겨서 상당히 거슬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퍼티를 하고 굳은 후에 사포로 면을 갈아주겠지만 그 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퍼티 때 면을 최대한 깔끔하게 잡아둬야 했다. 사포로 면을 갈아주는 작업을 '샌딩(sanding)'이라 하는데 요즘엔 전동공구가 잘 나와있어서 편하지만 우린 공구가 없다. 그 말인즉슨 손으로 해야 한다는 건데 퍼티 때 면을 고르게 잡지 않는다면 샌딩을 하면서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힘이 들 수 있다.
주방에 퍼티를 마친 후에는 도배를 준비하는 퍼티를 진행했다. 꺼낸 김에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미리 해두려는 것이다. 왜 도배를 할 곳에 퍼티를 하냐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도배는 두께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종이와 비슷한 소재이기 때문에 작은 요철들이 눈에 잘 띈다. 도배 때 면이 잘 맞아야 하는 곳은 도배지의 끝자락들이 붙을 곳이다. 벽의 네 모서리와 창틀 주변이나 문틀 주변이 그렇다. 우리는 도배를 '띄움 시공'을 할 텐데 그럼 벽의 가운데는 벽에서 도배지가 약간 떠 있겠지만 끝자락들은 도배지를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벽에 달라붙어 있다. 도배의 다른 방식으로는 '밀착 시공'이 있는데 이 시공법은 말 그대로 도배지의 전체 면이 벽에 밀착되어 붙는 시공법을 말한다. 면이 잘 잡혀있는 벽의 경우에는 깔끔하게 잘 붙겠지만 면이 잘 잡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띄움 시공을 하여 요철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그런 방식이다. 기능적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인테리어라는 것이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기능을 챙길 것이 남아있지 않다면 미관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것.
퍼티는 나중에 도배공정의 키를 잡을 아내가 도맡아 했다. 아내는 도배지를 붙일 방법에 대해서 본인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름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으로 작업에 임했다. 창문 옆은 우레탄 폼이 발포되어 있기 때문에 채워주는 작업에 신중을 가했다. 창호공사를 하면서 창 틀 주변 공간을 뭐 이리 많이 뒀는지 퍼티를 하면서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안 그래도 생각보다 퍼티가 잘 되지 못하는데 공간까지 넓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이나 삐걱삐걱거렸다.
꺼내둔 퍼티를 어느 정도 다 소진한 후에 아내는 주방 타일의 줄눈 작업을 진행했다. 백색 타일이니 줄눈도 당연히 백색을 선택했다. 줄눈을 그냥 슥슥 넣으면 될 줄 알았지만 타일이 물결무늬가 있는 형태다 보니 생각보다 줄눈을 넣는 게 쉽지 않았다. 타일의 이음에 줄눈을 바르고 고무헤라로 위에서 아래로 쓱 훑으면 깔끔하게 들어가야 하는데 줄무늬가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번거롭더라도 고무헤라를 가로로 여러 번 긁어 넣어야 했다. 그래도 이런 작업들에 대해서 아내는 금방 적응하고 나름의 기술을 터득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삐걱거리지만 집중해서 방안을 찾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불평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아내의 모습에 새삼 존경스럽고 대견스러웠다.
줄눈 채워 넣기가 끝나고 나면 일정시간 양생을 시킨 후 스펀지로 전체적인 면을 닦아줘야 한다(굳이 스펀지가 아니어도 무관하지만 스펀지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이 과정은 줄눈을 넣으면서 타일에 줄눈이 묻었을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들을 깔끔하게 닦아주면서 줄눈 시공 상태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전체적으로 네 번 정도 닦아낸 것 같다. 처음에는 스펀지에 물기를 많이 남겨서 닦았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물기를 꽉 짜내어가며 닦아줬다. 줄눈을 넣기 전에는 확실히 일체감이 들지 않았는데 줄눈을 넣고 나니 타일과 타일 사이의 까만 줄이 사라지고 일체감이 생기니 보기에 이뻤다. 마감이 되어가는 게 새삼 신기했다.
그동안 나는 마감을 하기에 간섭이 될만한 부분들을 해결해 나갔다. 이제 전기작업도 끝났으니 거실이나 방에 할 작업은 도배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도배하기 전 초배지를 붙이거나 부직포를 붙일 수 있게 마감을 잡아줘야 했다. 우물천장을 떼어내면서 뻥 뚫려버린 거실 천장에 합판을 시공하면서 막았다. 굳이 합판을 붙인 이유는 거실 중앙에 실링팬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힘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석고보드에 나사를 고정시키면 석고보드가 나사를 잡아주는 힘이 부족해서 힘없이 빠져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나사가 힘을 받으려면 합판 같은 목재나 무게를 잘 버틸 수 있을만한 자재를 시공해야 한다. 만약 콘크리트라면 구멍을 뚫어서 칼블럭을 넣어줘야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고정할 수 있다. 합판을 고정시키고 남은 공간들은 현관에 가벽을 세우면서 남은 석고보드를 사용해서 마감을 할 예정이다. 부디 실링팬을 잘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중하게 고정을 했다.
아내는 줄눈을 넣은 이후로 본격적인 퍼티 작업을 진행했는데 몇 날 며칠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 심신이 날이 갈수록 지쳐만 갔다. 오늘은 퍼티를 바르고 다음날은 마른 퍼티를 샌딩하고 그리고 일을 마치기 전 미비했던 부분에 다시 퍼티를 하고 다음날 마른 퍼티에 샌딩을 하고 그런 나날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퍼티를 시작한 후로 우린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샌딩 하며 나오는 퍼티가루 때문에 온몸이 하얗게 되어서 눈사람처럼 퇴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아내는 나에게 "오늘은 저녁을 뭘 먹을까?"라고 매일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집에 남아있는 거 뭐 있는가?"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따라 갑자기 돈가스가 먹고 싶어서 아내에게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눈이 번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양식으로 하자, 내가 어린이세트를 만들어줄게!"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친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감탄을 했다.
"대박 진짜 너무 맛있겠다.!"
돈가스도 모자라서 심지어 수프라니, 최고였다.
맛있게 먹고 열심히 일해야지. 하하하 아내에게 너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