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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Nov 26. 2024

스크래퍼, 이젠 안녕.

마르고 닳도록 긁어댄 스크래퍼.

  타일을 붙이고 퍼티를 시작하면서 그간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을 올려볼까 한다.


  아내는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완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다. 다른 면에서는 좀 정리되지 못하더라도, 좀 깨끗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다르다. 확실하게 계획을 세우려 하고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편이다. 그런 아내가 이번 공사를 하면서 정말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열심히 했던 작업이 있었다. 그건 도배지 제거였다.


  공사가 처음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자 가장 오래 한 일이기도 하다. 퍼티를 시작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철거할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간 많은 공정들이 있었지만 퍼티를 하기 전까지 꾸준히 해오던 공정이었다.

공구를 구입했지만 사용할 줄을 모르는 아내의 모습.


  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의 아내는 공사에 대해서 그저 '일반인'이었다. 공구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길래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물어봤다. "뭐 해?" 그랬더니 아내의 대답은 나를 한껏 힘 빠지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공구를 샀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모르겠어.." 나는 이 대답을 듣고 허탈했지만 귀여운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내는 본인도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공구에도 적응하랴 고된 일도 적응하랴 처음은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일하는 서로의 모습이 서로의 힘이 되어 줬던 것 같다.

주방 실크 벽지 제거 중.

  나는 도배지 철거라는 게 별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생각하기에 그냥 뜯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벽지를 죽 죽 찢어내고 요철이 심한 곳을 조금 손봐주는 정도였다. 벽지를 죽 죽 찢어내는 것까지는 맞았지만 그 후의 공정은 '조금'의 정도가 아니었다. 아내가 손바닥보다 작은 벽지의 잔해를 뜯고 있을 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제거해야 해?"


  마스크를 쓰고 있던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마스크를 벗고 설명을 해줬다. 아내는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는 걸 눈치챘었던 듯하다. 아내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는 '띄움 시공'을 할 건데 그러면 테두리만 접착이 되기 때문에 접착되는 부분만 제거하면 돼.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곳이나 띄움 시공을 할 수 없는 곳에는 '밀착시공'을 해야 하는데 그때 이렇게 도배 잔해가 남아있으면 도배지 두께만큼 단차가 생기니까 시공 후에 자국이 남아. 그래서 다 벗겨내야 해."

  호기심이 해결된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엄지 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올린 후 내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리고 아내는 다시 '삭삭삭삭' 소리를 내며 스크래퍼질을 이어갔다.

현관 옆 도배지 스크래퍼로 잔해 제거 중.

  벽은 벽대로 아내가 제거하고 천장을 같이 철거한 날이 있었다. 이 날은 계획했던 공정이 있었는데 아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천장 벽지도 다 떼어내자는 이야기를 해왔다. 초기의 생각은 테두리만 좀 떼어내야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철거를 해두지 않으면 천장을 볼 때마다 떼어내지 않은 게 생각나서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가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도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면서 '괜찮겠지.'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게 된 덕이다. 손댈 수 있는 순간이 앞으로도 있다면 넘어가도 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지금 이후 다음 공정으로 덮어버리면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만족할 정도로 작업을 해둬야 한다. 많은 곳에서 '덮으면 괜찮아' '덮으면 안 보여'하는 그런 말들이 많지만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 살 집에 그런 생각을 불어넣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천장 석고보드에 붙은 도배지 제거 중.

  아내는 천장 벽지 철거를 끝으로 도배지 철거가 끝이 났다. 내가 도와주지 않고 혼자 일해서 힘들고 외로웠던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노는 게 아니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내가 놀고 있었으면 도와달라고 말했을 텐데 딱 봐도 바빠 보이고 집중하고 있어서 혼자 참아내느라 힘들었었나 보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마음이 짠해졌다. 그래도 말하지 그랬냐고 아내에게 말을 했지만 돌아보면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그리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우린 서로 안아주는 걸로 합의를 내렸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한 30초 넘게 안고 있었던 것 같다. 끝남을 축하하는 포옹이기도 하고 그간 힘들었을 아내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서로 응원해 주며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서 끝까지 해보자 라는 말을 하며 나는 한마디를 던졌다.


  "도배지 철거가 끝나니 샌딩이 다가오네."


아내는 위로받아서 마음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 그 말을 들으니 전보다 더 우울해졌다며 농담을 했다. 나는 이런 힘든 상황도 농담한마디 하면서 생각을 다잡을 수 있는 아내가 참 대단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참고로 나는 쿠크다스 심장이라 조금만 일이 잘못돼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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