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여기 온 지도 벌써 2달 정도가 된다. 2022년 11월 10일 한국을 떠나 온 이후 하루하루가 추위와 싸우고, 끼니 걱정을 하고, 한식에 필요한 식자재를 사 모으고, 근처 한인 마트 중 하나는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고, 그런데도 안 벌고 쓰기만 하며 몇 년을 보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일일이 한국 물가와 비교해서 더 비싸다 싶으면 슬그머니 장바구니에서 빼고 한국 돈 삼천오백 원 정도 하는 버스비가 아까워서 걸어서 왕복 한 시간 거리면 당연히 걸어가고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캐나다 하면 혹한의 추위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저번 주, 안구 속 습기가 얼어붙고 코털 속 수분이 실시간으로 들숨에 얼다가 날숨에 녹고 그렇게 얼다가 녹는 걸 반복하며 코딱지가 콧속에 가득 있는 느낌이 드는 영하 30도 아래도 떨어지는 날을 겪고 나니, 오늘 영하 10도에 날씨 좋다 별로 안 춥네 이런 소리를 하고 앉아 있다.
여전히 바닥난방이 되지 않고 내부 온도와 실내온도가 딱히 크게 나지 않는 듯 느껴져 이게 냉장고인지 서랍인지 뭐 이런 잡생각도 하게 되는 캐나다는 아직 이방인의 나라이다. 수족냉증으로 고통받던 자의 지옥은 아마 겨울만 연속 재생되는 캐나다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징벌 10억 개 중 하나는 되지 아닐까. 이러저러해서 지옥에 가게 된다면 불지옥으로 떨어지는 행운을 지옥에서 누렸으면 하는 망상을 한다. 불가마가 여기인가 하고 내 누울 곳이 여기구나 하며 입을 털고 있는 나를 상상하며 혼자 키득거린다.
지옥을 지옥인지 모르고 살면 그 사람에겐 지옥은 없는 거다. 매일 반복되는 권태로움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지루함의 연속만큼 끝내고 싶은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미련도 없고 욕구도 없고 아는 맛이 무섭다 하더라만 그 아는 맛을 누리는 것조차 귀찮아지면 그 지옥에서 벗어 나는 방법이 생을 마감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 극심한 우울에 빠지게 된다. 천국 간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거기는 지옥이었고 끝나지 않는 권태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지옥이지롱 하는 드라마 내용이 떠오른다. 굿플레이스가 알고 보니 굿플레이스가 아니었더라는데 넋 놓고 한 편 보고 나면 자동 재생되는 방식에 더불어 자의든 타의든 그다음 편이 궁금해서 결국 며칠 만에 드라마 몰아보기 다 해버렸던 과거의 나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느꼈던 나름대로 알찬 시간이었다고 지금의 자신을 설득한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중독성향이 강하지만 흥미로운 또 다른 새로운 걸 발견하면 금방 또 거기 몰두하게 되기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그 즐거웠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 쾌감을 다시금 얻기 위해 주변을 탐색한다. 쾌감본능을 나침반 삼아 항해 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도 문제겠지만 한 가지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 또한 골칫거리니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고 싶은 마음에 계란 부자를 꿈꾼다. 계란이 하나도 없거나 하나밖에 없으면 그거 하나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관심을 끄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욕심이 넘쳐서 이것저것 다 해보느라 한 가지를 오래 못 붙잡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뜨거운 관심이 순식간에 식는 냄비근성에, 성인 ADHD로 진단이라도 받으면 약이라도 복용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끼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하겠다. 산만하고 부산스러운 것은 본인한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느낌이다. 효율이 넘쳐서 대충 보는 듯해도 다 자기 거로 흡수하고 스스로가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것저것 다 할 줄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굿플레이스에서처럼 억만년의 시간이 내 앞에 있어서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시간이 있으면 내가 편하게 느끼는 속도 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즐거움을 찾겠지만 즐거움을 누리는 데는 품이 든다.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희박하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소소하게 작은 행복감을 맛보는 건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혀 열심히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살지도 않는 올해를 살아가는 몇십억 중에 하나인 별것 아닌 내가 나한테 허락된 행복을 좀 누려 보리라 마음먹었다.
가성비 차고 넘칠 때 행복하지 않은가. 하룻밤 50만 원짜리 호텔방은 당연히 좋다. 50만 원 주고 50만 원짜리 방에 묵는다면, 하룻밤 5만 원짜리 방이 한 오십만 원은 족히 나갈 것 같아 보일 때 느끼는 기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5만 원 주고 예약한 그 방이 지금 보니 구석구석 딱 마음에 들고, 어디 50만 원을 준 것 같은 그런 방이라 SNS에 올려 자랑하고 싶은 그 기분 좋아지는 순간이 행복인 거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라고 누가 책을 썼던가 아니면 대놓고 얘기했던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데 진짜 격하게 공감한다. 약으로도 가질 수 있고 돈으로도 사는 소소한 행복이지만 돈 안 주고 가지면 더 짜릿하다. 가성비가 폭발한다. 이제껏 깨닫지 못했던 행복한 감정을 유발해 줄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을 테니 내가 할 일은 이제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행복한 감정을 언제 느꼈는지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기록해 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온갖 형태로 나의 경험과 감정을 기록하는데 집착해 오지 않았던가. 사진을 찍어 소셜 네트워크 상에 공유하는 것이 즐거웠듯이, 맞춤법 고민하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듯 문장을 쏟아내는 걸 적어보고, 말이 되나 고민해 보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 순간 자체를 즐기고 있으니 행복한 감정을 누리는 내 나름의 방법을 발견한 듯해서 뿌듯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소원이 뜨끈뜨끈하게 지져 보는 거였는데 소원 빌면서 몇 시간을 오븐에 굽고 지지고 바쁘게 보냈다. 따끈한 오븐에 손을 대고 있으면 난로가 따로 없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고, 얼음장 같은 손을 좀 녹이겠다고 빈 오븐을 켤 수는 없으니 바나나 브레드도 만들고 뭉근히 오래 익혀야 하는 걸 일부러 저녁 요리로 선택하기도 한다. 털모자, 털장갑, 털양말, 털목도리, 온갖 방한 제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여기 110V에도 쓸 수 있다고 광고하는 적당한 가격의 전기장판을 한국에서 직구했다. 1월 첫째 주에 한국을 떠났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낮에 우체부 올까 봐 우체부가 올 만한 한 시 반쯤 경에는 외출하기가 꺼려진다. 한번 못 받은 우체국 택배는 바로 SHOPPERS drugmart라는 약국 내 우체국으로 반송되는데, 직접 찾아가야 하는 이 동네 택배 방침 진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 없는 사람이 생각만 해도 진저리 쳐지는 캐나다 한파에 20킬로 정도 되는 바로 못 받은 택배를 직접 찾으러 가서 집까지 걸어서 들고 와야 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전기장판 사는 김에 충전해서 쓰는 손난로도 두 개 주문했다. 한국에서 오고 있을 택배가 도착하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나저나 코도 시린데 피부 저자극에 호흡도 편한, 은행강도가 쓸법하기도 한 그런 스키 마스크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대를 발견하면 당장 속으로 외칠 것이다. 택마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