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캐나다
4월 30일 오전에 시작된 한국으로의 여정은 5월 2일 오후에 결혼 전까지 썼던 나의 예전 침실이자 현 부모님의 창고에 짐을 푸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5월 1일 밤 12시가 될 무렵, 정식 개업 전 소프트 오프닝하듯이 살짝 도착 하긴 했다. 기내용 캐리어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동대구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야 알았다. 장거리 이코노미석 창가 자리에서 짐짝처럼 구겨져 있다가 주변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단 사실에 감격하며, 그 순간을 편의점 신상 바밤바 맛 비비빅을 사 먹는 걸로 축하하기로 했다. 캐나다인 시어머니께서 3년 전쯤 한국 방문 때 쓰고 남은 100원짜리 11개를 처리할 좋을 명분이었다.
인천공항 편의점 CU3호 밖에는 자전거 거치대처럼 캐리어를 둘 곳이 있다. 바퀴달린 가방은 편의점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간만의 편의점 구경을 두 바퀴나 하고 모든 매대를 매의 눈으로 훑으며 신상 아이스바 하나를 계산하려는 순간, 1200원이라는 소리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100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미안함에 시선조차 못 맞추었지만 슬쩍 본 편의점 주인아저씨는 편의점 진상 하루 이틀 대하는 것 아닌듯 의연한 태도로 무표정을 고수하고 계셨다. 미안함도 잠시, 비비빅을 까서 한 손에 든 나는 인증샷 찍느라 영혼까지 끌어올린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버스 출발 3분 전 와작와작 녹여 먹으며 바늘 백개로 찌르는 듯한 잇몸 통증과 머릿속 혈관이 쫙 오그라드는 브레인프리즈 두통을 견디며, 짐을 한 손에 들고 뛰어갔을 땐 짐칸엔 작은 캐리어 하나 간신히 쑤셔 넣을 자리만 보였다. 이리저리 짐칸 빈 곳을 뒤지던 기사 아저씨가 요령 있게 만들어 낸 자리에 수화물 짐을 밀어 넣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 화면 사진 속 비비빅을 눈으로 핥으며 고속버스 안 와이파이 비밀 번호를 찾아 주위를 흘깃거렸다.
저번 버스엔 기사님 근처에 비번이 적혀 있더니만 이번엔 천장에 붙어 있었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가 더 나은 선택인가 내 취향은 어느 쪽인가 이런 딱히 쓸데없는 생각에 몰두하며 내 얼굴 빼고 다 잘 찍어주는 생애 첫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찍은 스무 장도 더 되는 구름 사진 중에 단 3장을 고르는 구름 사진 올림픽을 개최하느라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냉철한 탈락 기준을 적용시켰다.
한밤중 불 꺼진 고속도로 휴게소의 스산함조차 반가웠다. 그나저나 명색이 5월인데 캐나다 보다 한국이 더 추운 건 반칙이지 이러면 안 되지 속으로 꿍얼꿍얼거리며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긴 옷을 배낭에서 꺼내 나무꾼룩의 완성, 톤 다운된 빨간 바탕 검정 체크무늬 셔츠 안에 한 겹 더 껴 입었다. 그 길로 한국에서 지내는 2주 동안 세탁도 못하고 그 셔츠를 거의 매일 보온 용으로 입게 될 줄은 설마 몰랐다.
동대구 버스 터미널에서 기내용 캐리어가 없다는 사실에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버스에 돌아가 천장 짐칸까지 훑었지만 허탕일땐 처음 며칠을 지내기로 한 부모님 집으로 가서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할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똥멍청이 짓을 했으니 내 똥 내가 치워야지!
한국 전화번호가 없으니 한국 부모님 집으로 배달시킨 와이파이 도시락이 도착할 때까진 와이파이 거지신세였다. 본인 친구 집에 처음 간 애인 핸드폰이 자동으로 와이파이 연결되는 것 보고 바람도 잡았다는데, 자동으로 연결되어야 할 내 예전 Note 8은 와이파이 신호를 못 잡았다.
노년의 엄마는 여태껏 와이파이 공유기가 작동 안 하는 상태인 줄 모르고 여태껏 집안에서 본인 핸드폰 데이터를 물처럼 퐁퐁퐁 쓰고 계셨다. 부채처럼 생긴 와이파이 시그널이 없으면 집에 인터넷 연결 끊긴 거라고 몇 번이나 말해 두었는데 전혀 생각도 못하신 눈치셨다. 뭣도 모르면서 인터넷이 웬 말이냐고 냅다 엄마한테 소리부터 지르며 타박하는 아버지에게 따박따박 싫은 소리를 하고 내가 제일 답답한 사람일 테니 공유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전자 기기 심폐소생술 결정타, 완전히 껐다가 다시 켜기를 하니 다행히도 정상 작동했다.
인천공항 분실물 보관소는 오전 7시부터 전화 연결이 가능하다고 앵무새처럼 대답을 내놓는 챗봇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이니 직접 가서 기다리고 분실물 신고 접수를 하는 게 맞다 싶어 그 길로 바로 밤눈 어두워 밤엔 운전 안 한다는 부모님의 차를 얻어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해 새벽 1시 출발 4시간 정도 걸리는 인천공항행 버스에 다시 올랐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혹시나 편의점 앞에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 편의점 옆에 되게 비싼 빵집이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인천공항 모든 편의점을 뒤졌으나 허탕만 치고 분실물 보관소 직원이 출근할 때까지 2시간을 보낼 최적의 장소를 찾아 헤맸다.
남편이 잔액2만 원 정도 남았다고 건네어준 선불카드로 2시간 미만 1인 사우나 비용 만원에 때수건 구매 비용 이천 원까지 더해 계산하고 한산한 새벽 인천공항 지하 샤워장에서 두 시간을 혼자 뜨거운 물에 여독을 풀고 때까지 밀며 뽀득거리는 피부에 다시 화장까지 한 후 찾아간 분실물 보관소에서 잃어버린 캐리어와 눈물겨운 재회를 했다.
이게 한국 치안이지 감탄하며 장거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또 8시간 고속버스를 탄 그동안의 맘고생이 한 번에 날아가버렸다. 바로 출근길 인천공항에서 서울의 교통체증을 통과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또 네 다섯 시간 더 있어야 된다는 것 쯤이야 별일 아닌 기분이 들어 옆에서 핸드폰을 셀프 입국심사대에 두고 와서 한국 돈 하나도 없는 상태로 아침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젊은 여성분의 안타까운 사연을 외면하지 않고 고속 버스비를 대신 결재해 주었다. 금요일 퇴근해서 밤도깨비 동남아 관광을 하고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20대의 체력은 육아를 견디도록 만들어졌다지만 원래 용도 말고 다르게 쓰는 게 더 재미난건 일탈의 즐거움과 일맥상통한다.
며칠 후 혹시나 확인해 본 계좌에는 버스비가 송금되어 있었다. 내가 심은 인류애 한 조각이 계속해서 온기를 남기며 떠돌기를 기원하며 나의 고향 관광 첫째 날의 오후가 시작되었다.
남은 13일간의 고향 여행기는 야금야금 녹여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