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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Jul 01. 2023

#9 20230630

에드먼턴, 캐나다

뜬금없이 한 밤중에, 남편과 나는 지금껏 살면서 제일 진땀 나게 어색했던 순간에 대해 떠벌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에피소드가 더 강렬한가 배틀에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목욕탕에서 홀라당 벗은 채로, 너무나 탕온도가 높아서 나가려고 움찔거리다가 가르치던 학생의 학부모와 눈이 딱 마주쳐 마침 잘됬다며 학습 관련 질문을 하는데,  탕 밖으로 용감하게 나가지 못하고 일일이 질문에 대답하며 탕 안에서  삶기고 있던 상황은 이제 18살 된 형이 바로 위층에서 여친과 뜨밤을 보내느라 천정이 삐끄덕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늦게 일어나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진행 중인 민망한 소음을 배경으로 저것들 또 시작이네라는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있던 상황에 완전 발렸다.


험한 청소년기를 나름 슬기롭게 잘 헤쳐 나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럴듯한 백수까지 된 남편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바로 몇 시간 전 이제 애정의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듯하다 말하며 눈이 좀 아리던 상황은 싹 잊은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목욕탕 사건 보다 더 획기적으로 어색했던 순간이 떠오르긴 한다. 괜히 생각했다가 생각이 나 버렸다. 24살 전 벌어진 일은 인간적으로 묻고 가야 한다. 이성이 과연 존재하긴 했을까 하는, 인생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반면 제일 주관적으로는 추하던 과거 아니던가.


막장 주말극 소재다 싶은 과거사는 최소 1L는 같이 나눈 후 서로의 약점을 교환 하듯 은밀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파티원 모집!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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