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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Dec 01. 2023

#18 20231130

어쩌다 샌디에이고에서 L.A까지 Ep.5

샌디에이고의 마지막 일정은 그다음 날 한국으로 향하는 지인의 집 근처 미국 식료품점 두 군데와  한인 마트 구경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 한식 선호 입맛이지만 딱히 집에서 자주 밥을 해 먹지는 않아 북미 지역 식재료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지인의 언니와 함께 샌디에이고에서 제법 크고 유명하다는 슈퍼마켓 두 곳을 누비며 낯선 외지 식재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들은 뭐 먹고사나 이런 소소한 호기심을 채우는 것 역시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한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여기 한인마트 Zion market은 영어 간판 옆에 한국식으로 '시온 마켓'이라 한글간판이 따로 있으나 영어간판 그대로 발음하면 꼭 자연 마켓처럼 들린다. 여기 현지인들이 자이온 마켓이라 하는 게 왠지 한국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유기농 식재료 파는 가게 이름을 연상시켜서 나 혼자 속으로 피식거렸다.  북미지역이라는 특별한 상황임을 고려하고도 나름 가격까지 이성적인 매장 진열대를 꽉꽉 채운  한식 식자재에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내뱉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 매대 가득 차게 진열된 소주와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를 보고 잠시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멍해졌다.


북미 지역에서 술은 무조건 주류상회에서 따로 파는 줄 알았는데 지역에 따라 주류판매법이 다르다고 하고 캘리포니아 주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 주에서 맥주와 와인 등 도수가 낮은 술을 슈퍼마켓과 주유소,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고 하니 미리 계획해서 집에 쟁여 놓지 않는 이상 갑자기 술이 땡겨 편의점 혼술 이런 건 꿈에도 못 꾸는 나의 부러움 섞인 감탄사에는 질투가 배어났지만 이제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내 건강을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국가적으로 챙겨주는구나  말도 안 되는 잡생각을 하다 도착한 지인의 아파트는 야자수 더해진 스페인 식민지 풍 건물 속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이질적인 된장찌개 냄새가 온 집을 채우고 있었다.


예전에 한식당을 운영한 적 있다는 금손 룸메이트와 살며 더더욱 부엌살림에 초연해져 버린 지인이 손수 해 준 집밥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제일 신경 썼다는 된장찌개는 까맣게 잊고 슴슴한 한식 반찬에 금손 룸메이트분이 직접 담근 김치를 샐러드 마냥 그릇 가득 채워 몇 번을 리필해서 먹고 난 후 잊고 있던 된장찌개를 다시 데워 밥 한 그릇 더 먹어 버렸다. 며칠 동안 에너지바 우적 거리며 발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느라 쌓인 여독이 한 번에 풀리는 듯했다.


반찬 만들다 보니 김밥 속 재료로 적절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김밥 싸 줄 수 있냐는 지인의 요청에 얼른 신나서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 19년 차에 살림을 아무리 발등으로 했다고 한들 김밥 정도야 옆구리 안 터지게 만들 자신 있다 큰 소리 빵빵 쳐놓고 속으로는 제발 터지지 말아라 기도하며 열심히 열 줄 정도 만들어 내일 한국으로 가는 지인이 공항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아침 식사 할 도시락까지 준비한 후 지인 냉장고 속 맥주를 거덜내기 시작했다.


새벽 다섯 시 L.A공항으로 출발이란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그 전날 모든 준비를 끝낸 후 게스트하우스 사물함에 남은 짐을 욱여넣고 지인의 언니가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정신 차려 밖을 보니 어느덧  출근 시간과 맞물려 그 유명한 L.A의 교통체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출근하는 남들이야 교통체증으로 속이 터지건 말건 내 머릿속은 라라랜드 도입부 뮤지컬 OST가 자동재생되고 있었다. 둠칫둠칫 어깨춤과 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무반주 탭댄스를 억누르며 무사히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한 지인과 내가 밴쿠버 근교로 이사 오면 일 년에 두세 번은 볼 수 있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지인을 배웅하고 햇볕 쨍쨍한 오전에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라라랜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리피스 천문대는 무료입장이지만 주차비가 시간당 만오천 원 정도로 살벌하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천문대 앞까지 차를 몰고 갔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본인은 와 본 적 있으니 초행인 내가 조금이라도 더 즐기라고 차로 거의 입구까지 데려다주시고 저 아래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한 후  걸어오신 지인 언니분의 속 깊은 배려로 다리품 덜 팔고 탁 트인 전망에 눈호강하며 천문대 앞에서 제법 가까이 보이는 그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은 사진으로 담자 화면 속에서 깨알만큼 작아졌다. 영화 속 세바스찬과 미아의 첫 데이트 속 그리피스 공원은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해서 영화 속 호젓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도떼기 시장판으로 덧입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조만간 또 재탕할게 뻔한,  이제는 식상해진 라라랜드가  다시 특별해지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흐뭇한 풍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순두부 맛집 리스트에 항상 상위권을 당당히 차지하는 L.A북창순두부, L.A갈비 본진으로 일단 쳐들어갔다. 점심시간은 지나고 저녁 시간은 아직 되지 않은 애매한 시간이라 다행히 대기줄이 없었고 지난 일 년간 외식은 꿈도 못 꾸는 삶을 꾸려온 입맛에는 너무 강렬한 양념맛이었지만 서빙하는 사람들도 한국인, 매장 가득한 손님들도 대부분 한국말로 대화하는 한국인들인 여기는 그야말로 한국 순두부집을 통째로 그대로 옮겨온 듯 계산대 앞 박하사탕과 이쑤시개 통 등 소품 배열 위치까지 완벽했다.  서빙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뒷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깔끔하게 그물망으로 고정한 것까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새삼 한국풍이 아니라 그냥 한국 그 자체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그분들의 체인점 인테리어 방침에 둘이서 해물 순두부에 갈비 몇 점 먹고 십만 원 정도 지출한 것에 대한 속 쓰림은 적당히 상쇄되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그랜드 센트럴 마켓 등  L.A에서 관광객들이 들릴만한 곳 몇 군데를 돌고 다시 돌아온 샌디에이고의 진짜 마지막 밤, 여행기념품으로 구입한 샷글라스가 깨질세라 더러운 빨래로 둘둘 감아 기내용 수화물 가방에 잘 챙겨 넣고 공항 직행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지도로 확인하니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이런 관광 인프라 너무 좋다. 영주권 문제로 불가피한 여행이었지만 최대한 즐겁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 지리멸렬한 시간에 우울해질 때면 한 번씩 꺼내볼 빛나는 여행사진과 추억이 눈 시리고 가슴 시린 앨버타의 살벌한 겨울을 잘 견뎌낼 내복이 되길 기원하며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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