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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Feb 21. 2024

#19 20240222

에드먼턴, 캐나다

  뜬금없이 남편 셋째 형의 현 와이프인 전직 여군 출신 캐나다인 시누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50시간 연속파티에 초대되었다. 지금의 캐나다인 남편과 함께 한지 이십 년이건만  한국에서 그 시간을 다 보냈기에 남편 쪽 친지들은 이제 갓 캐나다에 눌러앉은 내가 궁금했을 터이다. 이참에 20년 치 몰아서 보여주기로 하고 그 초대에 호기롭게 응했다.


 캐나다 여군이었던 시누이의 여군 시절 친구들로 가뿐하게 30년 지기 절친들이 대부분인 백인 중년 여성들의 2박 3일 에어비앤비 독채 잡아 놓고 50시간 동안 50살 생일 기념 우정여행에 난데없는 동양인 시누가 따라오다니, 파티 진행 요원으로 뒤치다꺼리하러 온 줄 알면 무슨 상큼한 독설로 김치 싸데기를 날려줄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설레발이 머쓱하게 제일 잘 놀다가 온 이야기를 누구라도 잡고 떠들고 싶은데 들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한동안 잊고 있던 글쓰기 습관을 다시 시작해 본다.  


 기저귀 입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그 귀엽던 조카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고 대학도 들어가고 엄마 50살이라고 파티도 손수 기획 한다니 안 도와줄 수가 없다. 지금 풍족하게 가진 건 시간 밖에 없으니 시킬 것 있으면 시키라고 큰소리쳐 둔 감당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와인 안주 준비와 아침 식사 준비였다. 이름도 이상한 샤퀴테리, 서큐터리, 샤쿠터리...도대체 뭐라고 표기해야 될지, 발음하기도 어려운 식문화가 SNS유행을 타고 당연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무 보드에 살라미나 치즈 몇 가지 대충 올리고 과일과 올리브나 곁들일까 했더니 50이란 숫자를 꼭 넣어야겠다는 조카아이말에 그렇게 해보자고 동의한 후 남편과 상의했더니 나무로 샤큐터리 보드를 만들어 주겠다고 그걸 선물로 줘야겠다고 남편은 내적 목수 본능에 불을 붙였다. 한동안 뚝딱거리길 삼일째, 뭔가 그럴싸한 게 나왔다. 한 번 쓰고 버리긴 정말 아까운데, 가지고 있기는 완전 쓸모없는 미래의 쓰레기를 향해 자랑스레 웃는 남편의 궁뎅이를 팡팡 두들겨 준 후에 이걸 재활용할 방안을 생각해 내며 남편과 나는 한동안 시시덕거렸다.


11인분의 일요일 브런치를 책임지기로 했는데  유제품, 견과류, 생선, 새우, 파인애플 알러지 더하기 글루텐 민감인에 저탄고지 키토식 하는 사람, 칼로리 조절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모두 맞춘 휘저어 익힌 계란에 따로 자잘하게 잘라 구운 감자를 얇게 저민 햄으로 감싸고 치즈 넣을 사람은 넣는 토르티야 랩으로 결정하고 들어 갈 재료를 내가 다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도착한 시누의 집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엄마가 파티에서 입을 옷을 건조기에 넣어 놓기만 하고 건조기를 작동시키지는 않은 아들내미의 만행으로 여행 짐을 하나도 못 싼 시누가 스트레스를 꾸역꾸역 삼키며 여자친구들과의 여행에서 게임 고득점자들에게 뿌릴 상품을 포장하고 있었다. 선물 포장쯤이야 껌이다 큰소리치며 내가 할 테니 짐을 싸던지 다른 일 하라고 물건으로 뒤덮인 거실 중앙에 앉아 잘 들러붙지 않는 희한한 스카치테이프와 잘 찢어지는 주제에 거친 느낌의 종이 포장지와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처음 몇 개는 각 잡아 예쁘게 포장하려고 애썼다. 각 잡다가 종이 다 찢어 먹고 몇 번 더 하던 끝에 선물 포장의 목적은 선물을 가리는 거지 뭐 이 종이 포장지 아낀다고 나한테 무슨 부귀영화가 오겠냐며 두 겹 씩 휘감으며 마구 낭비 한 끝에, 선물 포장 본질에 충실한 거대한 종이볼과 상자들을 차에 싣고 중간에 처음 만나는 시누의 절친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했다.


방 8개가 한 집에 들어가다니 정말 파티 하우스였다. 정성스러운 생일 축하 장식과 놀거리로 뒤덮인 거실과 부엌, 지하실 곳곳이 잘 정돈된 세련된 인테리어에 사진 찍기 좋게 따뜻한 조명으로 주름 따위는 사진에 찍히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효과를 주고 있었다. 생일 당사자인 시누이와 조카아이를 제외하고 거의 다 초면이기에 일부러 더 까불거리고 이리저리 설치고 다녔다. 나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그런지 나에 대해 놀라는 폭이 좀 클 때가 있는데 주로 영어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이다. 가뜩이나 별 말 안 해도 까르르 웃어 주는 상태가 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데  50시간 동안 궤짝으로 가져다 둔 온갖 술병들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동안 정말 열심히 다 같이 웃어 댔다.


최소 20년 지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알게 된 지 몇 년 안 되는 이제 성인이 되고 갓 대학에 입학한 조카아이 연하 남자 친구의 엄마가 이 무리에 끼어 있음에 1차 문화 충격을 받고 갓 성인이 된 친딸과 진짜 파티 진행 요원으로 온 그녀의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수위는  50금인 것에 2차 문화 충격을 받았다. 다들 오늘만 살고 내일은 사라질 존재인 것처럼 입담이 대단하고 왕년에 참 엄청난 만행을 화끈하게 저지르고 다니셨다. 잘 나가던 현역 여군시절 사귀던 여러 남친 중 한 명이 전문 스트립댄서였다는 썰이 시누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이 대화에서 가장 순한 맛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있었던 일은 라스베이거스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은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고 세대를 초월한 여자들의 수다 배틀은 나를 포함해 거의 50년 가까이 살아온 왕언니들의 온갖 상징적인 산전수전 공중전썰들에 더불어 헬리콥터에서 수직 낙하 훈련하며 전투 준비를 진심으로 했던 군대 경험담까지 포함됐다.


뭔가 비밀스러운걸 같이 했다는 공동체 의식이 싹트며, 이제 갓 새내기에 성인이 된 조카와 조카 남친의 사촌이기도 한 그녀의 친구가 무슨 일이든 엄마와 왕언니들과 상의하고 따뜻한 조언과 관심, 격려를 조건 없이 받을 수 있게 여성 연대에 새 멤버들을 포함시키고 축하하는 자리로도 50시간의 50번째 생일축하 파티가 톡톡히 한 몫했다.


금요일 저녁 불 붙기 시작한 수다는 토요일 동이 틀 때까지 생 크렌베리 잔뜩 넣은 보드카 칵테일과 함께 활활 타오르다가 토요일 늦잠 자고 안주 겸 점심으로 와인 1인 1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술자리 토크로 무르익어 갔다. 오래간만에 들이부은 술로 숙취에 시달리던 나는 파란색 게토레이가 위액에 섞여 녹색이 되어 내 입속에서 폭포수처럼 뿜어 나오는 간헐천이 되었고 내 만취 습관은 화장실 청소라는 TMI를 공유하고, 내 숙취의 고통을 직관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내 존재를 너무나 강렬히 각인시켜 버렸다. 토요일에 하겠다고 잔뜩 가져온 보드게임을 일요일 아침에 군대식으로 빡세게 몰아서 하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웃음을 나누고 다들 피곤과 숙취에 너덜너덜해졌지만 마음은 너무나 뿌듯하게 채우고 더 웃다가는 옆구리가 터지겠다며 행복 도파민도 마구마구 땡겨 썼다.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발산하고 왔더니 조용히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너무나 절실했지만, 일단 신라면 한 봉지 끓여 미원 한 꼬집 넣어 한 그릇 하는 것으로 여독을 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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