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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Jun 05. 2024

#20 20240520

에드먼턴, 캐나다

 선하게 나이 든 노신사가 내뿜는 귀여운 에너지에  자칫 말을 먼저 걸 뻔했는데 글씨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뒤에 있는 포스터 속 얼굴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


에드먼턴 한인회관에서 단 하루 진행되는 순회 영사관 볼 일을 해결하겠다고 쉴 새 없이 오고 가고 하는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던 그 노신사는 뒤에 본인의 얼굴이 절반을 차지하는 포스터가 시야에 걸리고 옆에는 출입문인 위치에 전략적으로 서 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게 느껴지는데,  대놓고 뻔뻔하게 본인 홍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서 인가 그 양가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본인 얼굴을 페이스 아이디처럼 쓰는 유명인이거나 그렇게 되고 싶거나 둘 중의 하나겠거니 생각하니 나 말고도 말 섞을 사람 많을 텐데 싶어 잠깐의 눈 맞춤과 무언의 눈인사만 나누고 나가려는 찰나 나를 따라온 캐나다인 남편에게 Are you done? 볼 일 다 봤냐고 먼저 영어로 말을 거는 용기를 내 보인 노신사에게  Done for the day! 오늘 할 일 다 끝냈다고 흐르지도 않는 땀을 닦으며 남편이 과장된 몸짓을 섞어 연극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대꾸하니  몇 번이나 던 포더 데이! 따라 하시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외국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 배어 나왔다.


어쨌거나 황혼의 인생을 불사르고 있는 현장에 잠시 스치듯 목격자가 되어 지나간 후 꽤 오래 여운이 남았다.  한참 지나고 나서도 마음속 잔상을 없애지 못해 구글신에게 뒷조사를 부탁했다. 에드먼턴 한인회관 행사 일정을 뒤지니 포스터 속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나왔다. 북콘서트차 에드먼턴까지 날아오신 유명한 시인이셨다.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같이 찍을걸, 말이라도 한 번 걸어 볼 걸 하는 이렇게 얄팍한 욕심에 사로 잡히다니 좀 당황스럽다.


그러고 나선 딱 자러 가기 좋은 이 새벽시간, 이불킥 하듯 그 순간을 되감기, 구간 반복해 가며 계속 곱씹고 있다.  아이돌 덕통사고 나서 덕질시작하듯 인터넷에서 신상을 털기 시작하니 아이돌 누구누구가 팬이라는 등 온갖 정보가 흘러넘치는 것이 캘리그래피로 자주 쓰이는 그 시구의 주인공이 아니신가. 하다 하다 영어로 번역된 시구까지 훑어보며 이 번역이 시의 느낌을 잘 살렸는가까지 고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오래 봐야 예쁘고 자세히 봐야 예쁘다면 대충 보는 눈길로는 참 예쁘기 힘들다는 소리 아닌가?

첫인상도 별로고 대충 듬성듬성 보면 참 눈에 안 차는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보고 자세히 봐야 예뻐 보이는 걸까. 그 정도로 인내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거면 예쁘게 보일 때까지 스트레스 좀 받았겠다 싶다. 짜증 임계점을 넘겨 부글부글 하는 심정을 승화시켜 쓴 시는 아닐지 상상해 본다.


*월마트에서도 한식재료 몇 가지 정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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