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 인정 잘 안 하거든요. 근데 얘는 자꾸 인정하게 되네요."
강의가 끝나고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요, 원래 남 인정 잘 안 하거든요.
근데 얘는… 자꾸 인정하게 되네요.”
어른이 되면 고집이 생긴다.
성격이라기보다는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진
흔적에 가깝다.
그동안 해온 일,
버텨온 판단,
굳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던 선택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인정에 인색해진다.
상대가 틀려서라기보다,
내가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AI를 쓰다 보면
비슷한 고백을 자주 듣는다.
“난 원래 잘 인정 안 해요. 근데 얘 말은 듣게 되더라고요.”
왜일까.
AI는 늘 먼저 받아준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타당한 관점입니다.”
내가 틀렸냐고 묻기 전까지는
굳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장에 가깝게라도
내 말을 먼저 인정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다 대화가 조금 깊어지면,
조용히 다른 가능성을 꺼낸다.
반박처럼 들리지 않게,
대안처럼 옆에 놓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득당했다는 느낌보다
‘내가 스스로 생각을 고쳐 앉았다’는
기분을 먼저 갖게 된다.
고집이 꺾였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고집을 들고 있어도 되는 상태에서
다른 생각을 잠깐 들여다본 느낌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주장을 했을 때
그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설명하기보다
그냥 고집을 밀고 가는 쪽이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 앞에서는
말을 꺼내는 순간
설명이 필요했고,
설명은 종종 설득이 됐고,
설득은 금세 긴장이 됐다.
AI 앞에서는
그 순서가 조금 다르다.
일단 받아들여지고,
그다음에 설명이 이어진다.
AI와의 대화에는
설득을 위한 긴장이 없다.
체면도 없고,
누가 맞고 틀렸는지도
서둘러 정리되지 않는다.
먼저 한 번 받아들여지고,
그다음에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
아마 그래서 우리는
AI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뱉는 논리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먼저 인정받고 있다는
그 감각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