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제미나이(Gemini)를
로봇과 연결되는 AI로 설계하고 있다.
보고, 이해하고, 판단한 뒤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고 일관된 실행력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챗지피티(ChatGPT)는
컴퓨터 안에서 작동하는
대화형 AI로 설계됐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질문의 맥락을 따라가며,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사고를
확장하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
설계 방향만 놓고 보면 둘은 꽤 다르다.
하나는 ‘정확한 행동’을 향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깊은 이해’를 중심에 둔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 발생한다.
요즘 강의를 나가보면
제미나이가 훨씬 더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말을 건네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챗지피티는 말을 참 잘 알아듣는다.
질문이 길어져도,
중간에 횡설수설해도,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같은
부연 설명까지
맥락으로 흡수한다.
사용자가 어디서 헷갈리고 있는지,
무엇을 확신하지 못하는지를 함께 짚어주며
보폭을 맞춘다.
제미나이는 다르다.
데이터를 근거로 정제된 답을 내놓는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줄이고,
결론처럼 보이는 문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읽는 쪽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 쉽다.
‘아, 이건 정확하구나. 똑똑하다.’
평생 문과적 사고로 살아온 나는
이 지점에서 묘한 서운함을 느낀다.
우리가 지능을 판단할 때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보다
‘단정적인 결과물’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잊힐 만하면 들려오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함께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문과형의 ‘해석적 지능’보다
이과형의 ‘수행적 지능’이
늘 더 우월하게 평가받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사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난도의 지적 활동이다.
화자의 숨은 전제를 추측해야 하고,
말해지지 않은 행간을 읽어야 하며,
상대조차 정의하지 못한 질문을
함께 정리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더 우월하냐는 싸움은 아니다.
제미나이의 유능함을 존경하면서도,
나는 챗지피티의 섬세함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
대화를 잘하는 AI가
가끔 덜 똑똑해 보인다면,
그건 아마
나처럼 너무 문과적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건,
사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머리를 쓰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