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존재 곁에 있을 때, 마음이 작아지는 순간

비교가 아니라 ‘기준선’에 관한 이야기

by 우물안고래
“AI랑 대화할 때
괜한 열등감 든적 없으세요?
얘는 이렇게 잘하는데,
나는 뭐지… ”

우리나라가 워낙 비교에 익숙한 문화니까,

사람뿐 아니라 기술 앞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는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묘하게 마음 구석에 남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감정은 질투라기보다 위축에 가까웠다.
열등감이나 좌절이라고 하기엔

짧게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었다.


아마도 그에게는
자기만의 ‘기준선’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는 해내고 싶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가야 하지 않나 싶은 선.


그 선을 향해
애쓰고, 헤매고,
어떤 날은 포기했다가
또다시 붙잡아보는 시간들.


그런데 AI는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컨디션을 묻지도 않고,
오늘은 좀 안 된다며 미루지도 않는다.


묻는 즉시 대답하고,
요청하는 즉시 정리하며,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져 있다.


그 압도적인 유능함 앞에 서면
비교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 비교의 방향은
‘쟤가 나보다 낫다’가 아니라
‘나는 왜 아직 여기일까’에 더 가깝다.


어쩌면 이건
성숙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자기 위치를 돌아보고,
자기 속도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니까.


다만 그 위축 속에 오래 머물면,
우리는 자신을 너무 빠르게
‘미완성’이 아니라 ‘부족’으로 번역해버린다.


사실 AI라고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도 하고,

확신에 찬 오류를 말하기도 한다.

분명 AI도 실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AI 앞에서 작아질까.


기계의 실수는
‘수정해야 할 시스템 오류’로 남지만,
나의 실수는
‘도려내야 할 존재적 결함’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AI는 틀려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곧바로 다음 답을 내놓는다.


사람은 다르다.
틀린 자리에서 한참을 머문다.
왜 그랬는지 곱씹고,
다시 시도할 수 있을지 망설이며
마음을 앓는다.


우리가 위축되는 지점은
AI의 정답률이 아니라
어떤 실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무기질적인 태도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주 잊는 사실이 있다.


AI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많은 연산 속에서 생겼을
망설임이나 잘못 짚은 생각은 가려둔 채,
항상 정리된 얼굴로만 나타난다.


편집된 장면은
언제나 완결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삶은 대부분 진행형이다.
그런데 우리는
AI라는 ‘완성된 장면’을 기준으로
자기 삶의 ‘진행 중인 장면’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
망설이며 고친 문장,
불안한 결정들.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그 흔들림들이
어느 순간
뒤처진 증거처럼 느껴진다.


잘하는 존재 곁에서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능력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기준선이 위로 이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완벽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누구라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기계에게는 오류일 뿐인 흔들림이
인간에게는 생각이 되고,
사유가 되고,
머무름이 된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한동안 서 있는 그 순간들이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장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잘하는 존재 곁에 설 때,
우리는 왜 이렇게 작아지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