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왜 일을 자꾸 쥐게 될까?

AI 앞에서 드러난, 일에 대한 기묘한 애착

by 우물안고래


“강사님은 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없으세요?”


여러 사담을 나누던 중,

누군가 툭 말을 던졌다.


“요즘 AI가 일을 너무 잘하잖아요.
그냥 맡기면 그만인데요.
이상하게 자꾸 제 일을 제가 다시 손에 쥐게 돼요.
예전에는 그냥 안 하고 싶었던 일도 AI한테 괜히 맡기기 싫어지고요.
제가 제 일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분이랄까요.”


말 끝에 웃음이 섞였다.

스스로도 이 감정이 조금은 낯설다는 표정이었다.

“저만 이런가요?”


최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AI를 쓰면서도

"왜 다 맡기면 그만인 일을 굳이 다시 붙잡게 될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들이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새로운 도구를 만날 때마다

항상 이런 반응을 보였던 건 아니다.


계산기, 엑셀, 검색엔진.

그것들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나보다 똑똑한 존재’ 앞에 서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편리한 도구가

하나 늘어났다고 생각했고,

기꺼이 일감을 넘겼다.


그런데 AI 앞에서는 다르다.


도구라기보다는

누군가 옆에 앉아 있는 존재에 가깝다.

말을 걸면 대답을 하고,

묻지 않은 것까지 정리해 내놓는다.


그 유능함을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질문 앞에 선다.

'쟤는 저렇게 잘하는데, 그럼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아마 우리는

오랫동안 일을 ‘성과’ 이전에

‘나를 증명하는 자리’로

써왔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고,

막다른 길에서 헤맸고,

그 과정을 통과해낸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일을 통해 확인해 왔다.


나라는 존재의 무게는

효율적인 결과보다,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웠던

그 고민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AI는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채

결과만을 내민다.


내가 묵묵히 걸어온

인고의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건너뛴다.


그래서 마음이 먼저 묻는다.

'나의 고뇌가 빠져버린 결과물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까.'

AI가 매끄러운 직선을 그어줄 때,

우리는 굳이 다시 펜을 들어

그 위에 울퉁불퉁한 곡선을 덧댄다.


그 서툰 흔적이 있어야만

비로소 ‘내가 한 일’ 같다는

묘한 안도감이 남는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놓지 못하는 건

결과의 완벽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 묻어 있는 나만의 흔적이 아닐까.


아마 이 미묘한 감정은

당분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기 일을 더 자주 붙잡게 될 테니까.


누구와 겨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직 이 일이

내 일로 느껴지기를 바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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