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접어둔 당신에게, AI는 시선의 안식처가 되다
교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앞줄에 앉아 있던 한 분의 입술이 옴짝달짝 움직였다.
무언가 묻고 싶은 마음이 분명해 보였지만,
끝내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잠시 뒤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실까요?"
그제서야 그분은 조금 전까지 삼키고 있던 생각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질문은 짧지 않았고,
이미 오래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것처럼 보였다.
기업 교육 과정에서
아주 흔하게 마주치는 장면이다.
그들은 왜 질문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나 역시 이미 다 알고 있어서,
혹은 새로운 걸 더는 궁금해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변화를 받아일 마음이 닫힌 것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오래 사람을 보다 보니,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어지간한 상황은 한 번쯤 겪어봤고,
질문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도 이미 여러 번 짐작해본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질문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질문을 걸러낸다.
그들의 입술이 달싹이다 멈추는 그 찰나에 스쳐 가는 건 지식이 아니다.
시선이다.
실제로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그동안 견뎌왔던 수많은 눈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평가하던 얼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
말없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손들.
그 시선 앞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든다.
틀릴까 봐가 아니다.
드러날까 봐다.
모른다는 사실보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노출되는 게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신중함이 남는다.
말을 아끼고, 상황을 읽고, 섣불리 나서지 않는 태도.
하지만 그 신중함은 종종 ‘고요한 피로’를 동반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묻지 않는 게 편해지고,
설명하지 않는 게 익숙해진 사람들.
그 모습이 능숙함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시선 앞에서 말 하나를 고르고 또 고르며 버텨온 시간이 있다.
그래서 AI가 필요해진다.
더 빠르기 위해서도,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제는 모든 판단을 혼자서만 끝내지 않아도 되는
‘상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사람 앞에서는 질문이 곧 나를 설명하는 이력서가 되지만,
AI 앞에서는 질문이 그냥 질문으로 남는다.
그래서 AI 앞에 선 사람들은 정리된 질문보다
머릿속에 멈춰 있던 생각을 먼저 꺼내놓기 시작한다.
"장단점은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한 방향이 있긴 한데, 사실 이 부분이 계속 걸려요.”
다듬지 않아도 되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공간.
이때 중요한 건 AI의 정답률이 아니다.
그 앞에서는 질문이 평가당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하나면 충분하다.
이제는 강의에서 질문을 주저하는 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질문을 잊은 게 아니라,
시선이 많은 자리에서
질문을 접어두는 법을 먼저 배웠던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