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근황을 묻다가,
내가 요즘 AI 강의를 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난 AI 못 써. 팝콘 뇌라서 그런지 그 긴 글을 다 못 읽겠더라고.”
뭘 하나 요청하면
AI가 줄글을 잔뜩 써 내려가는데,
그걸 읽다 보면 자꾸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는 거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국 끝까지 읽지 않게 되고,
차라리 자기가 직접 하는 게
속 편하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다가,
이내 잠깐 멈췄다.
‘팝콘 뇌’라는 표현이
묘하게 정확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고, 빠르고, 즉각적으로
튀어 오르는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만,
조금만 길어지면 끝까지 버티기 어려워지는 상태.
유튜브 쇼츠를 몇 개 보고 나면
긴 호흡의 영상이 괜히 답답해지는 그 감각.
문득 그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요즘 나 역시 AI를 쓰다 보면
대화창 속의 명령어가 점점 단호해진다.
“요약해줘.”
“결론만 말해줘.”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손은 이미 결론 쪽으로 먼저 움직인다.
맥락을 따라가기보다는
핵심만 골라내는 쪽이
훨씬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지점은 여기다.
AI에게 처음 말을 걸 때는 정반대로 말한다는 것.
“지금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줘.”
“자료 조사 해서 더 확장해줘.”
“아이디어 더 붙여줘.”
그러면 AI는 내 빈약한
한 줄을 바탕으로
생각을 늘리고,
맥락을 확장하고,
예상보다 훨씬 긴 글을 내놓는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AI의 글은 점점 길어지는데,
그걸 마주한 나의 생각은
점점 더 짧아진다.
확장하려는 인공지능과
문장이 조금만 길어져도 버티지 못하는 내가
같은 화면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만들어 달라고 해놓고,
정작 나는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 문단은 꼭 필요할까?'
'이 설명은 왜 들어갔을까?'
'결론만 보면 안 될까?'
내 안의 ‘팝콘 뇌’는
끊임없이 편집 가위질을 해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글의 밀도는 높아졌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설명을 견디지 않고
핵심을 빠르게 잡아내니
요지는 분명해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하지만 그 효율만큼
내 생각이 따라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핵심은 남았는데,
그 핵심에 머물 시간이
사라진 느낌이다.
밀도는 높아졌으나
사유가 도착할 자리는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
그래서 요즘은
요약을 요청하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다
의식적으로 잠깐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