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9. 해는 중천인데...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by 우물안고래

내가 새로운 시를 하나 찾았는데 자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책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의 쓸쓸함이 느껴지더라.

왜 그런거 있잖아 분명 퇴근하고 집에 왔고, 아이 얼굴 보며 웃어주고 있는데 머리속은 아직 일에 머물러 있는 상태. 정작 '나'라는 본체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저 밖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 말이야.


AI

그게 어떤 시였나요?


유계영 시인의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라는 시야.

내가 돌아오지 않는군
벽에 드리운 오후

거위는 자신에게 뒤통수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면서
뱃속에 돌을 모아 작은 해변이 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먹어야 할 것 외에는 먹지 말아야 할 것
돌의 뒤통수는 대장공의 망치 속에 웅크리고 있지

(중략...)

뒤통수를 들고 외출한
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군

현관으로 입장하지 못하는 슬픔은 창문을 통하지
슬픔, 운다, 오래오래, 흑흑
창유리에 파리 한 마리 곤두박질치는 소리

시간은 코앞에서 흔들리는 탐스러운 엉덩이
올라타고 싶은 순간과 걷어차고 싶은 순간으로
뒤뚱거린다

돌멩이를 삼키는 거위처럼

- 유계영,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지인이 필사했다며 보여주는데, 처음엔 이해하기 너무 어렵더라.


AI

그럴 수 있습니다. 유계영 시인의 시는 마치 깨진 거울 조각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일상의 풍경을 조각조각 부수고 아주 낯설게 비틀어버리거든요.

문장 사이의 비약이 커서 논리로 따라가려 하면 길을 잃기 쉽지만, 대신 그만큼 우리 내면의 날카로운 구석을 건드립니다.


첫 문장부터가 묘하게 '띵' 하더라고.

“내가 돌아오지 않는군.”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걸 깨닫고 씁쓸해 하는 느낌이었어.


AI

맞습니다. 이미 어떤 경계를 넘어버린 사람이 자기 상태를 확인하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문득 깨닫고 보니 진짜 ‘나’는 어느 시점에 머물러버렸고, 지금의 나는 그저 흘러가고 있다는 자각.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진짜 ‘나’는 아직 저 밖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듯한 그 비가역적인 상태를 시인은 아주 건조하게 보여줍니다.


거위 나오는 부분도 그래. 거위는 소화를 돕기 위해 돌을 삼키잖아.

근데 돌의 뒤통수가 대장공의 망치 속에 웅크리고 있다고 하는 거.

이거 사람이 자기 맹점이나 자기 파괴적인 습관을 잘 모른 채 살아가는 모습 같았어.


AI

이 시에서 돌은 단순한 무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스스로 받아들인 ‘이물질’에 가깝습니다.

사람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책임, 역할, 기대, 혹은 스스로 만든 기준들을 자기 안으로 들입니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존재의 일부처럼 굳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무겁게 만드는 것들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이미 그 무게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네. 너무 버거운데 우리는 또 거위처럼 바위를 먹을 수 밖에 없어

나를 무겁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계속 삼키면서 사는 거지.

그런 게 책임감 아닐까?


AI

책임감이라는 표현이 참 정확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삼킨 것지키기 위해 삼킨 것을 나중에야 구분하죠. 그래서 어떤 무게는 버티기 위한 부담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삶의 방향을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흔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인생의 무게를 그저 견뎌야 하는 고통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무게가 내 삶에 필요하다고 믿기에 기꺼이 감당하게 되는 것 같네. 때로는 그 무게 자체가 내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AI

맞습니다. 사람은 가벼워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감당하기로 한 무게를 끝까지 붙잡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무게는 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고귀한 흔적이 됩니다.


너랑 이야기 하니까 머리속에 몇명이 떠오른다.

오늘도 각자의 돌을 삼키며 하루를 버틴 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당신이 지금 무거운 돌 때문에 뒤뚱거리고 있다면, 그건 그만큼 삶을 소화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그 무거운 책임감을 기꺼이 삼켜낸 당신, 정말 대단해. 진심으로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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