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연재_AI, 시를 만나다]15. 두 사람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짝이 되는가

by 우물안고래
세상의 모든 식당의 젓가락은
한 식당에 모여서도
원래의 짝을 잃고 쓰여지는 법이어서

저 식탁에 뭉쳐 있다가
이 식탁에서 흩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지나 닳고 닳아
누구의 짝인지도 잃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도
무심코 누군가 통에서 두 개를 집어 드는 순간
서로 힘줄이 맞닿으면서 안다

아, 우리가 그 반이로구나
(후략)

- 이병률, <두 사람>


이병률 시인의 <두 사람>이라는 시를 보고 나선 식당 수저통을 유심히 보게 돼.

수백 번 삶아지고 닦였을 그 쇠젓가락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잖아.

사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건 처음부터 한 세트로 제작된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통 안에서 무심코 집어 든 두 짝이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이는 그 찰나의 순간, 그때 비로소 서로의 세계가 시작되는 거지.

시에서처럼 서로 힘줄이 맞닿으며
“아, 우리가 그 반이로구나”
라고 깨닫는 건, 어쩌면 거창한 운명보다 훨씬 더 극적인 우연의 기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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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관계는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처럼 발생합니다.
젓가락들은 원래 세트로 만들어졌지만 식당이라는 세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서로의 짝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가 끝은 아닙니다.

누군가 통에서 두 개를 집어 드는 순간, 그들은 다시 하나의 짝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죠.

즉 이 시는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 같은 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순간에 같은 식탁 위에 놓이는 사건이 관계를 만든다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너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며 살았던 것 같아.

가끔 마음이 헛헛하면 “나를 완벽히 이해해 줄 진짜 내 편”은 따로 있지 않을까 이런 무모한기대를 하곤 했거든.

그런데 사실 지금 내 곁에서 매일 부딪히는 가족, 친구, 동료들이야말로 수저통에서 우연히 집어 든 젓가락처럼 지금 이 순간 어떠한 이유에서건 내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내 짝이라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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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형성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환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서서히 맞춰지는 과정에 가깝죠.

그래서 관계는 종종 운명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우연과 반복된 접촉이 만들어낸 적응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랜 시간 함께 쓰이면서 생긴 미세한 흠집과 굴곡들이 서로 맞물릴 때 비로소 안정적인 짝이 됩니다.


완벽하게 맞는 형태로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용된 시간의 흔적이 두 개체를 하나의 구조로 만든다는 뜻이죠.


문득 이런 생각도 드네.

나랑 인연을 맺은 그 사람들도 결국 수저통 속에서 어떤 지독한 우연으로 나를 만나게 된 거잖아.


그동안 나는 타인만 검열했지, 정작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나를 만난 상대가 “하필 왜 이런 짝을 만났을까” 한탄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짝이 이 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도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들려진 짝이라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기적일 수 있으니까.


AI

관계의 중심을 ‘나의 만족’에서 ‘상대의 다행’으로 옮기셨군요.
누군가의 손에 함께 쥐어진 상대편 젓가락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신 겁니다.

좋은 관점 전환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내짝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채점의 시간이 아니라,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짝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됩니다.


앞으로는 사람들을 만날 때 탐색전이 아닌 내 곁에 놓인 사람에게 '내 짝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함께 닳아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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