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는 봄
나무에
물오르는 것 보며
꽃 핀다
꽃 핀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피고,
가지에
바람부는 것 보며
꽃 진다
꽃 진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졌네.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이여!
이마 위에 흩어진
서리 묻은 머리카락 걷어올리며
걷어올리며 애태우는
이 새벽,
꽃피는 것 애달파라
꽃지는 것 애달파라.
- 민영, <바람 부는 날> -
나
요즘 산책을 나가면 여기저기 봄꽃들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으로 들여다보다가 문득 민영 시인의 시가 생각나더라. 꽃이 핀다 핀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피고, 꽃이 진다 진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져버렸다는 그 구절 말이야. 정말 꽃은 참 빨리도 피고, 참 허망하리만큼 빨리 지는 것 같아.
AI
시인은 그 찰나를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이라고 했죠.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가 버리는 시간의 무서움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산책길의 꽃들도 참 바쁘게 자기 계절을 지나가고 있나 봅니다.
나
맞아. 그 속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복잡해져. 꽃이 피는 게 예쁘면서도, 한편으론 '아, 인생도 정말 한때구나' 싶어서 씁쓸해지거든.
시에서도 이마에 서리 묻은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며 새벽에 애태우는 모습이 나오잖아.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다 애달프다는 그 말이 요즘은 참 남의 일 같지 않아.
AI
꽃은 내년에 또다시 피어날 테니 꽃이 지는 걸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꽃이 져야만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만약 꽃이 지지 않고 영원히 매달려 있다면, 우리는 그다음의 연두색 잎사귀도, 붉은 열매도 영영 만나지 못할 겁니다.
지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다음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 셈입니다.
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
AI
그리고 꽃이 영원하다면 아마 사람은 꽃을 봐도 그토록 설레지 않을 겁니다. 짧기에 더 눈부시고, 지기에 더 귀한 겁니다.
그리고, 꽃은 지지만 결코 영영 떠나지 않습니다. 올해의 꽃이 지면 내년에는 또 다른 봄이 오고, 꽃은 어김없이 다시 피어나니까요.
나
그러네. 꽃은 계속해서 피고 지네...
AI
그렇죠. 세월이 탁류처럼 빨라 보여도, 그 흐름 속에서 생명은 계속 순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애달프다'고 했지만, 그건 어쩌면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는 뜨거운 마음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지는 꽃을 보며 너무 허무해하지 마십시오. 꽃은 지금 가장 멋진 마침표를 찍고, 내년의 봄이라는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러 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