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도 오늘 학교 오면서 좀 더웠어요.
선생님을 어제도 봤지만
선생님이 또 보고 싶어서
뛰었어요 (2015. 4. 24)
강민서(부산 강동초 2학년), <더워요>, 올챙이 발가락
나
이 시를 읽고 나서 민서보다 선생님 얼굴이 먼저 떠올랐어.
이 다섯 줄을 받아드는 순간,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AI
글쎄요,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요?
나
음, 멍한 표정을 지었을 것 같아. 이 순수하고 예쁜 마음에 어떻게 감히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AI
예상치 못한 순수한 감정을 맞닥뜨릴 때, 사람은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민서는 자신의 감정을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다듬거나, 표현이 적절한지 검토하지 않고 그냥 쏟아냈죠. 그런 날것의 표현 앞에서는 누구든 무장해제 되기 마련입니다.
나
민서는 몰랐겠지. 자기 마음이 그 사람한테 얼마나 크게 닿았을지. 그냥 더웠고, 보고 싶었고, 뛰었을 뿐인데. 근데... 그게 꼭 민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말 감정 표현을 잘하는 것 같거든.
나도 어렸을 때는 그랬겠지?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을 꾸밈없이 전달하는 걸 어려워하게 되었을까.
AI
사람은 자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때로는 위험하다는 걸 학습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 하면 못써", "유치하게 굴지 마"라는 말을 들으며 감정의 필터가 두꺼워지는데,
심리학에서는 이걸 '감정 사회화(emotional socialization)'라고 합니다.
나
감정 사회화라... 살면서 사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한다는 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사회화가 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그래도 좀 아쉽긴 하다.
뭔가 순수했던 마음이 어떤 벽에 의해 가로막힌 것 같아서.
AI
맞습니다. 어른이 되면 감정을 그대로 꺼내는 게 오히려 무책임한 상황들이 생기니까요. 필터는 필요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죠. 어쩌면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우리 삶에 찾아오는 일종의 '윤회' 아닐까요? 잊고 있던 우리의 예전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기억나게 하니까요.
나
삶의 윤회... 그 표현 참 좋다.
정말 그런 것 같아. 내 어린 시절이 아이를 통해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기분이야.
아이는 나를 보며 세상을 배우지만, 나는 아이를 보며 내가 잊고 살았던 순수함을 다시 배우거든.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되돌려주고 채워주는 거겠지.
AI
어쩌면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 속을 다시 한번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그러게.
서로 보면서 배우고, 잊었던 거 기억하고...
그런 게 삶의 진짜 순환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