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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May 20. 2024

“나이 들어서 그래” 후배의 말, ‘왠지 서글프다’

나이가 들면서 자주 다치게 되는 나,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지천명’, 나이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라는 뜻으로 삶이 성숙해지는 시기를 뜻하는 듯싶습니다. 40대의 끝자락에 와 있는 내게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년에 한 차례씩 경찰관은 의무적으로 체력 측정합니다.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합니다. 측정하는 종목으로는 100미터 달리기, 악력, 교차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입니다. 매년 실시하고 있고 측정 결과에 따라 각자 1~4등급으로 구분되며 그해에 승진하는 데 반영되어 나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특히, 외근 부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100미터 달리기, '매년 실시하는 측정 늘 자신있었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지난주 수요일 저도 체력 측정했습니다. 오전 11시까지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다 정오를 넘겨서야 비가 그쳤고 바쁘게 실시했습니다.


함께 간 동료들과 충분히 준비 운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100미터를 뛰기 시작하면서 서너 발짝을 뛰었을 때 누군가 뒤에서 야구공을 강하게 던져 제 종아리에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야!’라며 뒤를 돌아볼 정도로 실제처럼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뛰는 것은 둘째치고 걷지도 못할 정도의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완주하고 난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쥐가 났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30여 분간 아무리 마사지해도 나아지지 않아 결국 병원을 갔습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종아리 근육 파열’ 흔히 말하는 ‘테니스 레그’였습니다. 운동하다 갑자기 안 쓰던 근육을 쓰면서 비복근이 파열되는 증상입니다. 결국 반깁스를 했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배로부터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경찰특공대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경력에서 보면 알겠지만, 후배는 운동을 꾸준히 할 뿐 아니라 남자인 제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멋진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 후배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후배의 아버지도 경찰관으로 아버지를 통해 10여 년 전 후배가 고등학생일 때 처음 알았습니다.


현재는 친형제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후배의 전화벨이 울릴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후배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려 옵니다. “아이코 영감님. 나이 생각하셔야죠. 그러게 몸 좀 잘 풀고 하시지….” 역시나 놀려먹을 속셈으로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아니 선생님. 뭐 운동 잘하고 나이 어리다고 자랑하십니까. 나도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씩 10킬로미터 달리기하는 것 모르세요? 알면서 자꾸 놀리면 안 되죠”


“이제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관리를 잘하셔야죠. 이제는 나이 때문에 회복 속도도 느립니다. 나이를 생각하세요. 나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모두 맞는 말이라는 생각에 더 화가 났습니다. “아니, 형 다쳤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듣고 또 연락해서 염장을 지르실까?”


“이제 나이를 생각해서 100미터에 너무 목숨 걸지 말자. 박경감!!!” 그렇게 쓴소리를 남기고 후배는 통화를 끝냈습니다.


사실 농담으로 했던 이야기지만 한동안 멍하니 씁쓸했습니다. 그동안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몸은 아직도 20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두 착각이란 것을 알게 된 게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반깁스를 한 상태로 출근을 하다 결국 병가를 내고 4일을 쉬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꽤 많은 사람으로부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나이 먹어서 함부로 하면 안 돼”, “젊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준비 운동을 해야 해”, “젊었을 때 생각하고 막 뛰다 다쳐”, “마음은 훨훨 날 것 같은데 발은 느리지?” 등등….


사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몇 번이나 ‘뼈 때리는 말로 사람 속을 긁냐?’라며 혼잣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내가 몸은 늙어가고 있는대도 마음만 청춘이다’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왜 그런 것들을 몰랐을까요. 그리고 왜 어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냥 어른은 어른이고 무조건 어른스러워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동 신경은 느려지고 사고력도 떨어집니다. 누구나 그것을 다 압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그 대상자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그냥 소리 없이 공감해주고 함께 걸어가는 말과 행동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저는 앞으로 꼭 그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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