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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Jun 03. 2024

우리 동네 유명 영화배우 부부가 산다(?)

할아버지가 우편함에 써놓은 ‘게리 쿠퍼’,‘그레이스 켈리’

평소 동네 이곳저곳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콘크리트 아파트 사이를 벗어나 벽돌집을 지나 한적한 산책로까지 걷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도 좋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이색 간판을 유리창 넘어 내부의 분위기와 연관을 지어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렇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좋아서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얼마 전 운동하다 종아리 근육파열로 다리를 다쳐 거의 20여 일 동안 걷지를 못했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천천히 걸었다. 그래서일까. 더욱 설레는 마음이었다. 한참을 무작정 걷다 어느 이층집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꽤 오래된 집이었고 전에도 여러 차례 왕래하던 길이었을 텐데 다른 때는 보지 못했던 걸 봤기 때문이다. 확실히 천천히 걷다 보니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빨간 벽돌 담벼락을 따라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어느 것은 아직 새싹이었고, 어느 것은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것 같았다. 하나같이 파릇한 녹색 잎이 강렬했다. 누군가 신경 써 키우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눈길을 사로잡은 건 화초들마다 손으로 직접 쓴 표지 말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쓰신 것으로 추정되는 안내 표지 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관리에 대한 안내 표지 말이었다. 꽃 관리(책임자)의 ‘정’은 ‘할아버지’이고, ‘부’는 ‘할머니’로 표시되어 있었다. 꽃 명과 단위, 수량까지 네모난 표를 만들어 상세하게 적어 두었다. 5~6월에는 1일 1회 물주기(시간 오전 10:00~10:30), 7~8월에는 1일 2회 물주기(오전 9시, 오후 4시) 등 상세한 설명이었다. 이 꽃나무들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키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보시기에 누워서 크는 도라지가 버릇이 없어 보였나 보다.


그리고 그 옆 식물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건방진 도라지는 누어서 큰다” 웃음이 나왔다. 그 덕분에 한참 동안 도라지를 쳐다봤다. 사실 도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렇게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혼잣말로 ‘도라지야, 너를 키우는 할아버지께서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네가 버릇이 없다고 생각하시니 더 잘 크렴’이라 말을 건넸다. 혼자 그리고 실소가 나왔다. 그나저나 할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저 도라지들이 ‘참 버릇이 없다’라고 생각하셨나보다 싶었다.


그래도 도라지가 밉지는 않으셨나 보다. 다른 화초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옆으로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봄이 오면(작사 김동환)

 



할아버지께서 쓰신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몇 글자 틀린 글씨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정겨웠다. 그리고 저 글을 쓰실 때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됐다. 아마도 마음만은 청춘 아니었을까. 아직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를 향한 변치 않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지 않았을까. 할아버지께서 참으로 낭만과 멋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됐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눈에 띄지 않았던 대문 옆 빨간 우편함이 보였다. 우편함 옆면에는 손글씨로 ‘게리쿠퍼’, ‘그레이스 켈리’라는 명패(?)를 써 놓으셨다. 사실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1950년대 유명했던 미국의 영화배우였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낭만적인 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헉!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두분이 살고 있었단 것인가(?)


그분들이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설령 그분들이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충분히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있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낭만적인 삶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집 앞에서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주인공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 뒤로 한 시간 넘게 동네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있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도 나이가 들어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웃음을 주고 싶다’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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