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특이한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두상(頭上)이 ‘미사일’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말 그대로 별명이 ‘미사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외형을 빗대어 붙인 별명이라 그 친구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함께 “야, 미사일”이라고 놀려대곤 했으니까요. 그때는 그냥 그게 나쁜 짓이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별명을 갖고 놀려도 항상 밝았습니다. 친구들이 장난삼아 별명을 불러도 늘 웃었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야단을 맞아도밝은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그 친구를 제가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 중의 하나는 친구가 매일 싸오던 도시락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의 도시락을 보고 굉장히 부유한 집에서 산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도시락은 3단이었는데 고기반찬이 항상 있었고 서너 가지의 과일도 매일 달랐던 것 같습니다. 평소 제가 먹어보지도 못한 과일을 보면서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 친구의 도시락을 많이들 뺏어 먹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주곤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착해서 그런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다가왔습니다. 우연히 그 친구를 시장 입구에서 만났습니다. 아마도 부모님과 함께 시장을 다녀오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먼저 그 친구를 발견하고 그 친구에게 달려가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친구의 부모님께도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친구가 매우 당황해했습니다.
‘왜 그러지’라고 생각하던 순간 친구의 옆에 있던 친구의 어머니가 손짓으로 뭔가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수화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요. 그때 친구는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니지만 저도 그때는 상당히 놀라서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그 일이 있고 개학한 뒤 친구가 제게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해줄 수 있어?”
“어,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절대 말하지 않을게”라고 저는 약속을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여느때와 같이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과 잘 지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친구는 진짜 밝았던게 아니고 밝게 지내려고 안간힘을 써 가며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지난주 제가 근무하는 옆 부서 팀장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에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다 이번 상반기에 같이 발령받아 왔기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팀장이었습니다.
엊그제 근무를 하다 그 팀장의 부서원을 만났습니다. 그 직원은 평소에도 팀장이 늘 칭찬하던 경찰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사이입니다. 경찰관들은 꼭 같은 부서원이 아니더라도 금방 가까워지고 친하게 지내게 되는 업무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아니, 영백씨 팀장님이 코로나에 걸렸다면서요. 괜찮으신 거예요”
“네. 며칠 전부터 몸이 안 좋으셨는데 알고 보니 코로나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팀원들도 많이들 걱정했습니다”
“아니 팀원들이 잘 챙겨 드려야죠. 그분 나이도 들고 힘드신데 팀원들이 힘들게 하니까 아프신 거 아닙니까. 잘 좀 챙겨 드리세요”라고 다소 가볍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코로나에 걸렸던 옆 부서 팀장이 완쾌해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저는 문안 인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니 안 그래도 며칠 전 제가 팀원을 만나 팀장님을 잘 챙기라고 뭐라고 해줬어요”
“왜 그러셨어요. 그 직원 지금 병가 중이에요”
저는 당황했습니다. “병가라고요? 왜요?” 라고 물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요로결석에 걸려서 계속 힘들어했거든요. 그러다 제가 병가로 쉬고 있을 때 그 직원이 사무실에서 뒹굴고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또 몹쓸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본인도 아픈 사람인데 다른 사람을 잘 챙겨주라고 떼를 쓴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리고 남자의 요로결석이 얼마나 지독하고 고통스러운지는 워낙 많이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더 미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후배 경찰관에게는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직원도 제가 서두에서 말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처럼 항상 밝고 활기찬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말했던 것인데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이 났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큰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일이 제게는 크게 와 닿습니다. 그리고 그 후배 경찰관에게도 큰일로 기억될지 모릅니다.
‘아니 나도 아파 죽겠는데. 누굴 챙기라는 거야’라고 조금은 저를 원망했을지 모릅니다. 그나마 제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 후배 경찰관은 무심코 넘겼을 겁니다.
가끔은 별일도 아닌 일에 크게 화를 내기도 하고 막연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했던 일이 막상 닥치고 보면 별일이 아닐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일도 그런 듯합니다.
사실 제게도 제 나름의 큰 고민은 과거에도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집에서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아마도 다들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잘 버티고 아무렇지 않은 것인 양 지내는 것은 바로 ‘다들 이만한 고민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