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서울의 어느 전문대학교 근처로 출동을 나갔습니다. 정확히는 서울경찰청 다른 부서의 업무 지원 근무였습니다. 마침 그날은 대학교의 하계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기동대 경찰버스는 기본적으로 3대가 함께 출동합니다. 그리고 어디든 주차하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화장실입니다. 요즘은 급하게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경찰관도 그렇습니다. 그날은 학교 측의 도움으로 학교 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정문 양쪽 옆으로는 노상에서 꽃을 팔고 있었습니다. 졸업식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날은 유독 꽃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난 주말 친한 동생의 결혼식에 갔다가 장식에 사용된 꽃을 이쁘게 포장해 하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저는 가끔 그 꽃을 집에 가져오곤 합니다. 거실에 꽂아두면 최소 일주일은 활짝 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꽃이 시들고 있어 바꾸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 아침에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꽃을 본 겁니다.
저는 꽃을 팔고 있던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꼭 꽃을 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그때 시간이 아침 9시였는데 하루 종일 경찰버스에 꽃을 보관했다가 저녁에나 가져가면 시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학교 졸업식이라 꽃 팔려고 오셨나 봐요? 요즘 학생들이나 가족들이 많이 오지 않죠? 꽃도 축하해 주러 사람들이 많이 와야 팔릴 텐데요”라며 저는 다가갔습니다.
꽃을 진열하고 있던 아저씨는 저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계속해서 꽃을 진열하셨습니다.
“옛날 같지 않죠. 특히나 하계 졸업식에는 진짜 못 팔아요. 오는 사람이 있어야죠. 취직 못 하고 졸업을 미루다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더욱이나 그런듯해요. 저는 여기 가까운 데서 꽃집을 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기 뭐해서 나온 겁니다. 집사람이랑 새벽에 만들어 왔는데 이거라도 다 팔고 가야 할 텐데 못 팔 겁니다”라며 잠시 허리를 펴셨습니다.
“제가 집 거실에 꽃병을 두고 가끔 꽃을 꽂아 놓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꽃이 좋을까요?”
“요즘 꽃값이 비싸요. 원래는 여름에 꽃값이 많이 떨어지는데 외국에서 꽃들이 안 들어오고 우리 농가에서는 수익이 낮아서 재배를 많이 안 하고….”라며 긴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아침은 드시고 나오신 거예요?”
“새벽부터 집사람이랑 꽃다발 만들고 바로 나왔죠. 졸업식이 11시니까 끝나고 집에 가서 먹어야죠”
“아이고, 배고프시겠네요. 저도 새벽에 출근했는데. 우리 버스에 김밥이 조금 있는데, 한 줄 드시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꽃이 많이 팔리면 배부르겠지요”
저는 그냥 버스로 가서 김밥 두 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낯선 사람이 갑자기 김밥을 건넨다고 하면 뭔가 의심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같이 먹으려고 두 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줄을 아저씨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사장님 근데 저 경찰관인 거 아셨어요? 왠지 딱 알아보신 것 같아서요”
“당연하죠. 여기 바로 앞에 경찰버스들도 있고. 요즘은 누가 말을 걸어요. 아무한테나 말 걸지 않아요. 세상이 옛날 같지 않아요. 옛날에는 지나가다 잠깐 들려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말을 걸지 않아요. 경찰관들이야 항상 일하면서 사람들과 편히 말하니까 모르는 거죠”
“아, 이미 제가 경찰관인 거 아셨구나”
저는 당시에 상의 안에는 경찰 근무복 반소매를 입고 있었지만 바람막이 점퍼를 밖에 입고 있어 제가 경찰관인 걸 모를 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찰관이라고 밝히면 김밥을 드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도 한 줄 먹으려고요. 혼자 드시면 맛이 없으시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김밥 한 줄씩을 입에 물었습니다. 그때 바로 알았습니다. 아저씨께서 엄청나게 배가 고프셨다는 것을요. 제가 서너 개 먹고 있을 때 이미 아저씨는 한 줄을 다 드셨기 때문입니다.
김밥을 드신 아저씨는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습니다. 거기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저는 근무를 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근무가 끝나고 경찰버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고 있던 버스로 옆 팀 경찰관이 찾아왔습니다.
“팀장님. 저기 학교 정문 앞에 꽃 팔던 아저씨가 팀장님을 계속 기다리고 계세요. 이미 차에 짐은 다 옮겼는데 팀장님을 보고 가야 한다며 못가도 계신다고 꼭 말 좀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무슨 일이지? 내가 실수라도 했나?’라고 걱정하며 급하게 정문 앞쪽에 주차된 트럭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아니 사장님 저를 찾으셨다고요. 제가 근무를 다녀왔거든요. 이제 끝나서 막 버스로 왔는데 다른 팀 직원이 이야기를 해줘서 왔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무슨 일은요. 제가 김밥값을 못 드려서 드리고 가려고 기다렸죠”
“밥값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아침에 김밥 한 줄 주셨잖아요. 그것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 시작하면서 꽃도 많이 팔고 갑니다. 그래서 제가 밥값으로 꽃다발 하나 드리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사다 드린 것도 아니고 남아서 드린 건데요. 진짜 괜찮아요”
“아닙니다. 제가 꼭 드리고 싶어요. 지금 20분 넘게 출발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받아주세요”라며 차에서 꽃다발을 내어왔습니다. 그 말에 저는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가지도 않고 오랜 시간 기다리셨다는 말이 너무도 감사하고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경찰버스로 돌아와 옆자리에 두고 그 꽃을 바라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결혼식장에서 가져왔던 꽃과 바꿨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너무나 싱싱하고 이쁩니다. 볼 때마다 왠지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합니다.
꽃다발을 주신 꽃집 아저씨의 이름도 모릅니다. 서대문구 어느 꽃집인지도 전혀 모릅니다. 그 사장님께서 제 글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분께 다시 한번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사장님. 저 그때 전문대학 앞에서 만났던 경찰관입니다. 저는 그냥 제게 있던 김밥 한 줄을 같이 나눠 먹었을 뿐인데. 그때 주신 꽃다발 덕분에 며칠째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분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해 주신 경찰관들이 보람 있는 일을 하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진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근무하는 경찰관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