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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일 Aug 06. 2024

손 떠시는 어머니, 몰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훨씬 많은 듯 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지방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뵌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불효자라 그러겠지요.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모시고 30분 일찍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는 고모님과 함께 일찌감치 식장 앞쪽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올 때부터 어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고 말씀도 많이 하지 않아 조금 신경이 쓰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느덧 여든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고혈압 약을 계속 먹고 계십니다.


평소에도 어머니의 건강이 늘 신경 쓰였던지라 계속 어머니 쪽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예식이 한참 진행 중이었고 계속 어머니가 걱정되어 어머니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로 여쭤봤습니다.


“어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아침에 밥을 잘못 먹었나 보다. 체한 것 같아”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밥을 제대로 못 드세요. 약이라도 사 올까요?”, “그래라. 가스 활명수하고 한약 환으로 된 소화제 있어. 그걸로 좀 사 와라.”


저는 급하게 예식장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약국에 가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약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어머니 이거 드세요. 말씀하신 약 맞죠?”라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제게서 약을 건네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약을 손에 쥐고만 있을 뿐 바로 드시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 왜 안 드세요? 빨리 드세요”라고 조금은 다그치듯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예식 다 끝나고 나가서 먹으마”라고 살짝 웃으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단순히 어머니께서 예식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들고 있던 약병을 건네받아 뚜껑을 깐 후 다시 어머니께 건넸습니다.


“어머니 이제 드세요. 제가 약 봉투도 따 드릴게요”라고 말을 건넸고 어머니는 “있다가 먹는다는데 그래”라며 조금은 짜증스럽게 말씀하시며 다시 병뚜껑을 닫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어머니와 저는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했습니다.


얼마전 고향집에 갔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서 예배를 드리던 중 손을 살며시 잡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마지못해 약병을 들어 드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작은 병이 마치 쇳덩이만큼이나 무거운 것 같은 힘겨움과 함께 입 주변으로 약물을 얼마나 흘리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황급히 휴지를 꺼내 어머니의 입 주위와 옷깃을 닦아 드렸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서 뭘 드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없이 식사를 같이했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며 밥을 먹은 적이 없었던 겁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많이 아프신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괜찮다는 표정을 제게 연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안심시키시려는 듯 다시 약병을 들어 어머니의 입 가까이 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손을 심하게 떨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형이 내게 해줬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승일아. 어머니가 요즘 손을 떠신다. 병원에서는 고혈압 약을 계속 드시면서 나타나는 합병증 같은 거라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지만 더 조심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걱정이다.”


저는 형으로부터 그 말을 분명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한 귀로 흘려들었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손 떠는 모습을 저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는 어머니께 계속해서 약을 드시라고만 고집을 피웠던 겁니다.


저는 눈물이 울컥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아 드리며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잘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린 후 조금씩 드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는 쉽지 않게 약을 다 드셨습니다.


그 시간 예식이 계속 진행하고 있었고 뒤쪽에 몇 분은 분명 우리의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조금 창피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젊고 건강한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렇게 나약해지신 것도 부끄럽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저 자신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예식은 끝이 났고 어머니는 식사하러 식당에 가서도 제대로 식사를 못 하셨습니다. 뷔페 한편에 있던 죽과 과일을 조금 드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보니 어머니께서는 언제부턴가 저와는 식사를 같이 안 하시고 ‘밥 생각이 없다’라거나 ‘이미 식사했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갈 때면 어머니께서는 종종 꽃게탕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어머니는 꽃게탕을 같이 드시며 제게 건네기도 하시고 하셨는데 최근에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어머니께서는 저와 식사하시다 당신이 손을 떨고 제대로 식사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저는 매일 같이 어머니에 대해 생각합니다. 요즘은 고향 집에 내려가면 국 없이 밥을 먹곤 합니다.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꽃게탕도 이제는 입맛이 변했다며 먹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사실 그런들 뭐 하겠습니까. 여전히 어머니는 손을 떨고 계시고 식사를 어렵게 하고 계시는데요.


어머니는 오늘까지 그렇게 지내고 계십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저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많이 갈라지고 트고 주름도 많아지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손으로 음식을 하시고 직접 손빨래하시며 자식들을 키우셨고 또 제 차에 묻은 기름때도 맨손으로 벗겨내신 손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손이 이제는 떨리기까지 합니다.


저는 정말 나쁜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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