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후 입꼬리 운동

by Yoni Kim


때때로 한바탕 울음 뒤에 찾아오는 고요가 있다.

소리 내어 울든

숨죽여서 울든

속으로 울든 중요치 않다

울음 터트리기 시작할 때의 묘한 이완작용은 찰나

머릿속을 뒤흔드는 시끄러움은 영혼이라도 되는 듯 내 몸을 유영한다.

울음이 다 마르고 나면 그 시점부터 나의 주변 공기는 무겁게 소리를 지탱하며 고요해진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렇게 찾아온 고요의 시기에 입꼬리운동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방법은 아래와 같다.

일단 울음을 그쳤으면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입 모양을 아주 크게 ‘아’, ‘에’, ‘이’, ‘오’, ‘우’로 벌려준다.

당겨지는 입의 근육들을 느낀다.

또 변화하는 눈 주변 목 주변의 근육들, 가능하다면 턱뼈의 움직임도 느낀다.

이제 입을 다물고 입꼬리를 올리는 동작을 10회 반복한다.

최선을 다해서 입꼬리를 가장 높이 올려본다.

기분이 허락한다면 눈도 함께 웃어본다.

잇몸이 보이도록 웃어본다.

얼굴의 여백면 근육들을 사용해 본다.








평소에 거울을 잘 안 봐서 몰랐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슬프게 변했다는 게 느껴져서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내 잘못은 아니지만 슬픔에 깊게 빠져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살 때 울음이 나올 땐 보통 혼자 방에 들어가 베개 커버에 눈물 자국이 남지 않도록 수건이나 휴지를 깔고 흔적 없이 소리 없이 울기를 반복했다. 보통 지금 20대 30대 자녀가 있는 부모님 세대가 보통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우는 것이 나약함으로 치부되었고 우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사람은 우울증이 심했던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항상 누가 자신을 봐달라는 식으로 소리 지르며 울 수 있었다. 아아아, 꺼이꺼이꺼이, 흑흑흑, 엉엉엉.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귀를 막고 숨을 죽이며 울었다. 우는 것에 대한 억압은 특히 나의 남자형재에게 가혹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아주 슬픈 일이 있으면 우는 일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나의 남자형제가 울면 아빠는 항상 탐탁지 않아 했고 이해하지 못하셨다. 또 우리 집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람은 엄마가 되어야 했기에 우리의 슬픔은 저울질에서 아주 가벼이 여겨졌다. 그렇게 숨죽여 우는 법을 터득했다.







반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울며 불며 고래고래 힘들다고 소리 지른 적도 있다. 그런데 뭔가. 후련하지 않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부모님에게 상처를 줬다는 미안함과 나조차 나 스스로를 제어하고 방어할 수 없었다는 답답함이 있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무딘 창과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하는 부드러운 방패가 따로 없다.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슬픔을 나누고 싶었다. 또 소소한 기쁨을 말하고 싶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지금은 독일에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지 2년 반이 다되어가지만 그 기억은 아직 내 얼굴 근육들이 하고 있는 바람에 때때로 갑자기 슬픔이나 고통이 찾아오면 베개에 수건이나 휴지를 깐 후에야 눈물샘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머리로는 이렇게 안 해도 괜찮다고 그냥 엉엉 울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 눈 주변 근육들에게는 이런 사전의 적응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파블로브의 개가 종소리에 반응해 침을 흘리듯, 이것도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일종의 반사 반응인 것 같다. 그래서 역으로 나를 위해 슬픔 후에 입꼬리 운동을 하는 근육 기억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슬픔이 오래 내 안에 머물지 않도록 또 슬픈 얼굴로 늙고 싶지 않아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