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하여

내 집은 네 옆이야

by Yoni Kim

독일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5번의 이사. 점점 작아지는 집. 돈이 좀 넉넉하면야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우리같이 공부 중인 대학생 부부에겐 매달 나가는 월세가 버겁기만 하다. 때문에 점점 싼 월세로의 이사는 오히려 해방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은 가장 컸지만 가장 외로웠던 곳이다.

나의 부모님은 빚 많고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우리 남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정말 열심히 일을 하셨다. 그렇게 점점 부모님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심지어 내가 중학생 땐 아빠를 거의 입학식 때 한번 졸업식 때 한번 이렇게 두 번 아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성실함이 무기였던 우리 부모님은 꾸준히 집을 넓혀갔지만, 그럴수록 그 집의 공간은 점점 비워져 공허의 빛과 먼지가 채우게 되었다. 그나마 반겨주던 강아지마저 강아지별로 가자 그곳은 세상과 단절된 듯 회색빛을 띄었다. 오히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이 돈이 없어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불법 건축물에 잠깐 살았던 그 공간이 더 따듯한 색을 띠고 있다. 추웠지만 가족이 함께라 따듯했고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그 공간.


집,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집에 살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집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충분하게 아늑한 집이 있음에도 더 넓고 좋은 집에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남기 위해 희생한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덕에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게, 본인들보다 많이 교육받고 키우는데 성공했다. 그저 아쉬운 건 우리에게 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 또 적은 추억마저 그리 좋지 않은 추억이 대부분이라는 것. 외로움이란 감정은 곧 스멀스멀 피어나더니 이미 온 집안을 뿌리 깊은 가시덩굴로 만들어 집이 불편한 곳이 되어버렸다는 것.


불편해서 내가 살기 위해 떠나온 곳. 더 이상 집으로 느껴지지 않는 곳.






이제 곧 남편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약 2년 뒤, 이젠 정말로 우리 둘이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는 집을 구해야 한다. 또 어쩌면 미래에 생길 수 있을 아이도 생각해서 집을 구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막막하긴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는 어찌 되었건 우리 둘 만 있으면 괜찮다는 마음인 것. 신혼부부의 나이브한 생각이겠지만 어떻게든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인 것. 당장 집이 없어져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 그런 안정은 집의 존재로 인해 얻을 수 있음이 아닌 집의 부재(불안정함)를 통해 강해지는 유대를 통해 도출된다.


언제 남편이 이런 얘길 했다. ‘어디 살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난 그냥 독일이 좋아서 독일에서 살고 싶어.’

그러곤 남편은 ‘그래? 그럼 어느 지역이 좋아?’

나는 고민하지 않고 ‘서쪽에서. 그리고 북쪽은 추우니까 중간이나 남쪽이 좋을 것 같아’

말 끝나기 무섭게 남편은 ‘그럼 나도 거기! 내 집은 네 옆이니까.’


내 집. 내가 가장 편한 곳. 내가 가장 편히 잘 수 있는 곳. 내가 가장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곳. 내가 힘들 때 가장 가고 싶은 곳. 내가 아플 때 가장 생각나는 곳.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물건을 둘 수 있는 곳. ‘내 집은 네 옆이다.’ 정말 좋은 말이다. 마음이 호빵 기계라면 차디찬 겨울에도 모락모락 김 나고 정말 맛있는 호빵들이 가득 채워지는 말이다.






사실 나의 엄마의 꿈은 대가족을 이루는 것이었다.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엄마 옆집이나 근처에 살아다오. 또 두 가정이 붙어있는 빌라나 단독주택을 볼 때면 우리 가족은 나중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면 좋겠다. 라던지.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일만 했던 것 같다.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곳에서 나오는 대가족. 다만 부모님이 간과했던 부분은 그런 큰 집이 있어도 가족이 떠나버리면 이룰 수 없다는 것. 엄마의 생각에 당연스럽게도 옆에 존재할 줄 알았던 우리 남매는 꿈을 이루겠다는 명목으로 그 집에서 도피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 후로 엄마는 목이 쉬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


남편과의 대화 이후 나의 부모님의 집 같은 존재가 우리 남매였음을 깨달았다. 사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회피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떠오른 이후 나는 집에 가는 고속기차 안에서 사연 많은 사람처럼 몇 시간 동안 눈이 벌게지도록 소리 없는 눈물이 났다. 외롭겠다. 안쓰러워. 내가 떠나서 너무 슬프고 아팠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떠났어야 했던 것 같아요.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