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를 하고 다닌 지 몇 개월이 지났다. 나름 회색빛을 띄고 괜찮아 보여 만족하고 있었다.
내 눈에만 만족이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듯했다.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정말 난감하다.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엘 가면 흰머리 하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들을 듣게 된다.
"ㅇㅇㅇ 접수해 주세요."
"몇 년생이세요?"
"42년이요"
"약 타러 오셨나요?
"네"
"손 좀 주세요 당뇨 좀 측정해요"
"어머님은 저기 있는데요 제가 42년 생으로 보이세요."
"아 죄송해요"
아무리 흰머리를 하고 있다고 80대 노인으로 보이지는 않을 텐데 접수 직원이 잘못 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개월간 계속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니 스트레스가 되었다.
헬스장에서 러닝 머신을 하며 열심히 걷고 있는 데 갑자기 남자어르신이 웃으면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헬스장에서는 아줌마들도 말을 잘 걸지 않는다.
놀라서 쳐다보니
"그렇게 걸으면 힘들지 않나요?"
"네?"
"5.5로 걸으면 힘들지 않아요?"
"아 안 힘든데요 왜 그러세요?
"나는 3도 힘들던데 그럼 1분에 몇 걸음 걷는 건가요?"
"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대답하기가 싫었다.
흰머리를 하고 있느니 정말 할머니인 줄 아셨나 가셨다가 다시 와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갔다.
헬스장에 갈 때마다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싫었다 순간 흰머리 때문인가 머리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흰색이라 오해를 받는 거 같아서 흰색과 어울리는 색을 생각하다 노란색으로 해 보았다.
머리를 본 아들이
"엄마 일본 날라리 같아"
"일본 날리리는 뭐니?"
"그렇게 보인다고 왜 노란색으로 했어?"
"물 빠지면 흰머리가 표시 안 나고 어울릴 거야"
노란 머리는 처음 해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오십에 이 머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물이 빠지면 흰머리가 어우러져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건강검진으로 자궁 경부암 검사를 하려 갔었다. 2년에 한 번씩 검진을 해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들었다.
"균 검사를 한번 해보시겠어요"
"네"
"분비불이 많으니 한번 해봅시다 이상 있으면 약을 좀 먹어야 해요 검사 결과는 3일 안에 나와요"
"네 해주세요"
얼떨결에 균 검사를 해본다고 했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머리 색이 노란색이라 아들 말처럼 일본 날라리로 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노란색으로 할 생각을 했어요"
헬스장에서 아주머니가 물었다.
"제가 흰머리가 많아서요"
"아유 나는 그런 용기가 안 나던 데 용기가 대단하네"
가는 곳마다 한 마디씩 듣게 된다.
듣기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스트레스가 된다.
내 머리인데 왜 이렇게 관심들이 많은 걸까?
튀지 않는 데 정답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계속되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이제 흰머리도 노란 머리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 다시 검정머리로 하자'
결정하고 미용실에 가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달라고 했다.
"왜 예쁘고 어울리는 데 다시 검정하면 흰머리 올라오고 또 2주에 한번 염색해야 하는데"
그간의 일들을 얘기해 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럼 염색 다시 해야지"
다시 염색을 하고 보는 사람마다 지금의 머리색이 제일 괜찮다는 말을 듣는다.
병원에 가면 본인 오셨어요? 아님 000 보호자님이라는 말을 듣는다.
머리색 하나에 사람이 노인에서 젊은 사람이 되었다.
머리색 하나에 많은 오해를 불러오니 이제 흰머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겠다.
10개월 만에 다시 염색하는 머리로 돌아왔다.
2주에 한번 염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막내딸이 엄마 염색하고 가장 좋아한다.
흰머리 하고 있을 때는 학교도 오지 말라고 했는 데 이제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딸이 성장할 때까지는 당분간 흰머리는 검정머리로 유지해야겠다.
어찌 보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남들과 어울려 살아갈 필요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