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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사슬은 과감히

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다

by 모닝페이지

10년 넘게 이어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 우연히 만나 가까워졌고, 힘든 시기마다 함께해 온 소중한 친구였죠. 서로의 흉허물도 알고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는 내 단점을 빈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몇 년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 허물을 감싸주거나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격하는 도구로 삼았고, 그 태도는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갔습니다. 서울깍쟁이 같은 성향에 인색하기까지 한 그녀와 계속 만나다 보면 나도 점점 쪼잔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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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변에서도 왜 그런 친구를 만나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친정엄마까지 걱정했지만, 당시에는 이유도 모른 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에 나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친구와는 거의 매일 만나 걷기 운동을 하거나 아이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또다시 내 허물을 비웃듯 말했고, 그날따라 그 태도가 유독 거슬렸습니다. 평소라면 순응했겠지만, 처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내일 도서관에 함께 가자"는 그녀의 제안에 바쁘다는 핑계를 댔죠.


그 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삐졌니?"라는 말과 함께 작년에 다녔던 둘레길을 다시 가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내 안에 쌓인 분노와 서운함을 자각한 순간이었고, 당분간 피하기로 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보이스톡을 걸어 내 전화번호를 잃어버렸다며 내가 먼저 전화하라고 했고, 그렇게 자신의 할 말만 하고 끊었습니다. 순간 또 잔머리를 굴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차례 지적했던 부분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거의 연락이 없었고, 가끔은 상견례 장소 추천 같은 용건으로만 연락이 왔습니다. 올봄, 그녀의 아들이 결혼한다고 연락이 와서 받은 게 있기에 결혼식에는 참석했지만, 다음 날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전화에서야 받았는데, 여전히 내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PC에는 저장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녀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점점 매일 지속적인 전화와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한창 글을 쓰고, 미션을 수행하며 바쁠 때였는데, 하루에도 수차례 걸려오는 안부 전화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나는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필터 없이 만나고 있었던 거라고.


그 외로움의 사슬을 끊고 나니 새로운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식물을 좋아하는 공통된 취미를 가진 친구였고, 대화도 잘 통했습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통해 사고팔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녀에게 배웠고, 요즘 유행하는 식물들도 그녀를 통해 접했습니다.


묵은 인연은 과감히 정리하고, 보낼 때가 되면 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이 찾아들고, 그 관계에서 또 다른 배움과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격한 감정은 사라졌고, 차분하게 그때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잠시 연락을 멈추고 한 발짝 물러나 보세요.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때로는 더 나은 인연을 맞이하는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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