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사회, 그리고 자발적 존엄사

by 방재원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우리 심장에 배터리가 달려 있어서 70세 생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진다면. 40세 이상의 성인에게는 배터리 전원을 언제든지 끌 수 있는 권한을 주고, 60세 이상의 어르신에게는 존엄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떻게 사람 목숨을 갖고 이리 쉽게 얘기할 수 있냐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것도 당사자인 우리가 만든 서사인데, 역피라미드 인구구조에서 살아야 할 곧 다가올 세대를 위해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그 서사를 한번쯤 다시 써 봐야 하지 않을까?


쪼그라든 경제와 바닥난 국민연금, 건강 보험 제도 붕괴, 인구 100명 당 한 명의 어린이... 이르면 한 세대, 늦어도 두 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우리가 직면할 현실이다. 그 사이에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한 1% 부자들은 이 땅을 떠날 것이고 남겨진 노인과 젊은이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 하나를 두고 사투를 벌일 것이다. 굳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구 문제 하나 만으로 대한민국은 이미 정점을 지나 소멸 단계에 진입했다.


별생각 없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100세 시대'는 단연코 재앙이다. 최신 의료 기술의 혜택을 받아 청년 못지않게 건강하고 부유한 일부 어르신들이 여생을 즐기는 동안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독거노인들이 이른 새벽부터 폐지를 주으러 서성거린다. 빚더미를 짊어진 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기성세대를 향한 그들의 분노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들끓고 있다.


세대 갈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생명이 존엄하다면 이후에 이 땅을 살아갈 손자, 손녀 세대의 삶 또한 동등하게 귀하다는 걸, 우리가 오래 살면 살수록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은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꼭...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 만이 가치 있는 인생일까?


무조건적인 자발적 존엄사를 지지한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없거나 크지 않더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본인이 삶을 멈추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국가는 그가 원하는 방식과 시점에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존엄한 죽음을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무리만큼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더 이상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이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손목을 그어서 생을 마감하는 참극만큼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보자. 나는 이 글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구체적인 연령대까지 언급하면서 존엄사를 지지하려는 걸까? 마흔을 넘게 살아 보니 인생의 희로애락은 대략 알 것 같더라. 남은 인생 궤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삶을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잣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20년 정도는 경제 활동을 더 해야 할 터이니 60세를 두 번째 기준점으로 삼아 봄직하다.


물론 70세를 넘어서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살고 싶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되 70세를 기점으로 부동산을 포함해 자산 규모에 따라 최대 50%까지 세금 또는 기부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제도화하면 어떨까. 더 이상 대궐처럼 넓은 집이 필요치 않을 것이고 노화를 늦추기 위해 피부 미용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그 재원으로 N포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중물을 제공하자는 얘기다. 너무 과격하게 들리는가? 이미 부의 무게추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이 정도 몸부림은 쳐야 반대쪽 방향으로 추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감히 우리 사회 존경받는 원로분들께 자발적 존엄사의 물꼬를 터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기왕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리신 대기업 회장님들께서 동참해 주신다면 그분들이 남긴 유산을 자양분 삼아 이 땅에 더 많은 생명의 씨앗을 심고 소멸에서 재생으로 선로를 갈아 탈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한가닥 기대를 걸어 본다. 잔인하게 들릴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남은 삶을 양보할수록 다음 세대가 생존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여러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인생은 각자도생이고 내가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사회가 소멸되는 것을 늦추기 위해 떠밀듯이 개인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문화를 조장하는 게 정당하냐고 반문한다면 몇 가지 해명을 하고자 한다.


첫째, 초고령화와 청년 인구 급감라는 정해진 미래 앞에 우리에게 더 나은 대안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미 중장년층 이상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몇 년 늦추고 수령액을 조정하는 차원으로 커버하기에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나를 포함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중장년 세대가 얼마나 더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할 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식견이 짧아서 십 수년 내에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있다면 당장 내 주장을 철회하고 어지러운 궤변을 늘어놓은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릴 용의가 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개선책을 찾아보자는 정도의 스탠스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고 더 이상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


둘째,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자연사 만이 바람직한 죽음인 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럿일 수 있는데 최대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여 다른 모든 견해를 덮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자식을 포함해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결벽에 가까운 까탈스러운 성향이 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나 보다. 결코 남에게 권장할 만한 생각은 아니지만 각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든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내밀한 서사를 가질 수 있는데 무병장수가 아니면 불행한, 또는 불완전한 삶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망자에 대한 폭력에 다름아니다.


마지막으로 유구한 과거로부터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미래의 그날까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내가 포기한 10년 또는 그 이상의 여분의 삶이 훗날 이 땅에 더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그들이 생존을 고민하는 대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동의를 얻기 힘들 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래 세대에 더 이상의 짐을 지우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존엄사에 대한 인식 전환을 해보자는 주장을 고집하려 한다.


자,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당신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 존엄사에 동참할 의사가 있습니까?"




내 대답은 "그렇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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