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방재원

2050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잠시 후 긴급 대국민 담화가 시작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올해 GDP 대비 국가 부채는 330%를 넘어섰습니다. 지난 2025년 이후 적자로 전환한 건강 보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긴급 재정 편성을 거듭해 왔으나 더 이상의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더불어 아시다시피 올해 6월을 끝으로 국민 연금 또한 모두 소진되어 저소득 노령층 분들의 생계를 위한 마지노선마저 붕괴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정부를 믿고 국민 연금을 납입해 오신 국민 여러분의 상실감 앞에 저는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지난해 출산율은 0.3명 밑으로 떨어졌고 수년 내에 우리는 인구 두 명 중 한 명이 70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여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AI 기술을 활용한 평생 교육, 이민 제도 활성화, 출산 장려를 위한 인센티브 프로그램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왔으나 결과적으로 젊은 인재 유출과 고소득층 부의 해외 이전, 그리고 연평균 성장률 -3% 에 수렴한 잃어버린 20년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눈가리개를 한 채 있는 힘껏 달리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 시간부로 긴급 계엄을 선포하고 70세 이상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강제 조력자살을 시행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달 출범 직후 조력 자살에 동의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여기에는 5대 병원장과 각 지역 거점 병원, 그리고 조력 자살에 동의하는 의사 실무진뿐만 아니라 군부대 장성들까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큰 혼란이 예상되는 바 정부는 연 내 강제 조력자살 프로젝트를 조속히 완수할 계획이며 그때까지 모든 공항 및 열차, 공공기관은 임시 폐쇄됩니다. 상주하는 지역에서 반경 5km 이상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며 위반 시 우선 대상자로 정하여 조력 자살을 실행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가의 본분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함께 생지옥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열차의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공멸하게 됩니다. 하여 70세 이상의 어르신 분들께 여러분의 손자, 손녀 세대의 앞날을 위해서 희생에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대통령님은 불과 한 달 전에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바로 이 자리에서 취임 선서를 하셨습니다. 오늘 하신 말씀은 이 정부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권 보호라는 헌법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네,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 과거 세대를 희생시키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26년 전에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 강한 국민의 저항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당시 불과 6시간 만에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이 있었고 헌법 77조에 따라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한 사례가 있습니다.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시겠습니까?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더라도 제 결정을 철회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포함한 이 정부에 속한 대부분의 장차관도 이미 서약한 부분입니다.


- 역대 가장 젊은 대통령과 내각으로 구성된 정부인데 그렇다면 당선 이전부터 준비해 온 계획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현재 정부의 주요 인사 또한 저와 뜻을 함께하는 분들입니다.


- 대통령님의 말씀은 반인륜적인 행위에 해당합니다. 훗날 역사의 평가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모두가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걸 지켜볼 봐에야 제가 역사의 큰 죄인으로 남겠습니다.


- 아무리 대통령과 내각 전반이 이번 계획 실행을 위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을지라도 26년 전처럼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리어 우리 사회에 내재된 세대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대한민국 부의 80%를 70세 이상의 국민이 소유하고 있고, 그중 상위 10%노인이 보유하는 자산 가치가 90%를 넘습니다. 이미 그분들 중 상당수는 이민 등의 형식으로 이 땅을 떠났으며 더 이상 부의 유출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어 선지 오래되었으며 아무런 비전을 찾지 못한 청년 세대의 분노를 기본소득이나 쿠폰발행 같은 임시변통으로 덮고 넘어갈 수 있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이제 이 땅에는 곧 빈곤한 노인과 청년들만 남게 될것이고 지금 청년 세대가 노인이 될 즈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트라우마는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러싶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도 한낱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배웠습니다. 유가족 분들의 심정을 어찌 제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른 대안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는 언제든지 물러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께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저는 집으로 돌아가서 대기 중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모든 과정이 생방송될 것입니다.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포함한 몇몇 인사는 자리를 지키겠지만 저와 뜻을 함께 한 대부분의 장차관급 인사 또한 조력자살에 동참할 것입니다.


- 잠시만요, 대통령님 나이는 이제 겨우 45세입니다. 대상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많은 분들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큰 충격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저라도 자청하지 않으면 이 계획은 시작 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 대통령님, 꼭 이렇게 까지 하셔야겠습니까?


... 여기까지 하시지요.







탕!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왜 불가지론을 지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