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가지론을 지지하는가

<내 인생의 인문학>을 읽고...

by 방재원

3일 밤낮을 바닥만 뚫어져라 황토빛 흙길을 걸었다. 어둔 그림자가 드리워져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드문드문 자취를 드러내던 모리아산이 청명한 하늘 아래 어느샌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흙바람 때문일까, 햇살에 반짝이는 한가로운 호수와 그 위로 기울어진 무화가 나무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형상이 잿빛을 띠고 있다. 뒤를 돌아본다. 나귀 위에 매달려 단잠에 빠져 있는 아들이 깰라 숨죽여 눈물을 삼킨다. 아마포 안 쪽 주머니를 더듬어 서슬 퍼런 감촉을 확인한다.


정오 즈음 되었을까...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로 접어든다. 코 끝을 싸하게 하는 풀 냄새를 헤쳐 나가는 동안 이따금 이름 모를 새소리만 구슬프게 메아리친다. 두어 시간쯤 굵은 땀을 훔치며 경사길을 오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황량한 평지가 기다리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들을 하나 둘 쌓고 그 위에 격자 모양으로 나뭇가지들을 가지런히 정렬한다.


"아버지, 뭐 하세요?" 아이가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나귀에서 내린다.

"제단을 쌓는 중이란다. 번제를 드리려고."

"그럼 번제물이 필요하겠네요?" 아이는 어느새 제단 위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들어 휙휙 허공을 향해 칼싸움을 시작한다.

"번제물은... 준비되었단다."

"네? 양 한 마리 보이지 않는걸요?"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들어 올려 나뭇가지 위에 눕히고 퀭한 눈으로 구름에 살짝 가려진 해를 바라본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 살랑이는 바람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침묵 속으로 잠든 듯한 적막한 땅. 이제 번제만 드리면 된다. 한 손을 아이 가슴에 대고 다른 손으로 여민 옷 사이에 숨겨둔 칼을 움켜쥔다. 옷자락이 붉게 물들어 가는 동안 아이를 향했던 손도 미끄러져 내려간다. 동그랗게 뜬 아이 눈망울, 그 뒤 편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눈물에 번져 흩어져 간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진다.


내가 정녕 네 아들에게 손을 대도록 내버려 둘 거라고 여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 그럼에도 내 말에 순종치 않고 스스로 상처를 내느냐.

제 아이를 두고 내기를 할 순 없습니다.

너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려 했건만 네 믿음이 미치지 못하는구나.

저는... 이삭의 아버지로 남고 싶을 뿐입니다.


검붉은 빗줄기가 흐르는 땅 위로 믿음의 조상이 될 뻔했던 한 남자가 스러진다.




불가지론(不可知論) : 인간은 신(神)을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종교적 인식론.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을 모두 배제함


10대와 20대의 많은 시간을 교회 공동체에서 지냈다. 금요일 저녁 숨길 곳을 찾을 수 없는 네온사인을 피해 기도실에서 흘렸던 눈물, 부다페스트 광장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불렀던 찬양, 번번이 머릿속을 폐허로 만들고 끝나 버렸던 하나님과의 내밀한 논쟁까지... 그 때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나를 옭아매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어떻게는 갈무리하고 넘어가야 했던 그 시절, 내 마음은 조금씩 불가지론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 불가지론이 내 삶을 지속하는 데 동인이 되었음을 비로소 고백한다.


"만일 영원한 존재를 진짜로 믿는다면, 유한한 생명의 상실을 애도할 이유가 없다."[내 인생의 인문학 by 마틴 허글러드]


우리는 끝(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취약한 존재이다. 각자 서로 다른 이유로 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은 구원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예비한다. 불안, 고통, 상실 속에서 헤매는 우리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에 위로를 받고 신앙의 문턱을 넘어선다. 그 순간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것(고통을 포함한)은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신앙이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청하기에 앞서 그분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 신이 자리할 곳을 마련하는 순간 가늠할 수 없는 그분의 뜻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고 또 다른 색깔의 번뇌를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고비마다 의지가 되어 주었던 그분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 또한 머쓱한 일이다. 애써 신의 존재를 부정한 들 머지않은 미래에 벼락처럼 닥칠 시련 앞에서 우리는 뻔뻔함을 무릅쓰고 그분을 찾아 또 다시 도움을 구할 것이다. 도돌이표 하는 악순환을 단 칼에 끊어 버릴 수는 없지만 나는 불가지론이 출구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신의 존재 유무, 나아가 다음 생에 대한 입장을 '유보'함으로써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 우리 안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유한함과 취약함은 너무 쉽게 '이생망'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도리어 우리가 숨을 한번 더 고르고 삶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감히 가치 있는 인생은 영원을 갈구하며 삶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선명하게 새기는 부단한 행위의 반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오직 시간의 유한함을 아는 사람만이 살아간다는 기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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