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이 말을 곱씹게 되는 건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는 뜻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유니클로 매장을 들러 의무적으로 옷을 사 입고 희끗해진 머리카락 한 올 빠질까 무서워 염색도 하지 않는데.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해서 시간 나면 집에 틀어 박혀 책을 읽거나 날이 좋으면 자전거 뒷좌석에 딸아이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전부인데. 특히 올해는 안팎으로 사정없이 얻어맞아 좀비가 돼 버린 나에게 어려 보이려는 욕구는 언감생심일 뿐. 그럼에도 왜 나는 이 단어에 꽂혔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는 하나뿐이다. 한 달에 한번 참석하는 글쓰기 모임. 늘 설렘 반 망설임 반으로 문을 열게 되는 이 모임에서 나는 감히 MZ 세대와 소통하고픈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날이 추우면 하얗게 내려앉은 구렛나루를 까망색 귀마개로 감춘 채 강남역 11번 출구를 종종걸음으로 오르는 올드 포티지만, 십 년, 아니 많게는 이십 년 가까이 어린 친구들과 굳이 어울리려고 애쓰는 안쓰러움에서 영포티 범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를 대면할 수밖에.
멤버들이 쓴 글에 댓글 하나 달 때마다, 단톡방에 톡 하나 올릴 때마다 너무 오버하는 가 아닌가 자기 검열을 반복해 온 지 어언 2년째. 모름지기 내 나이 대 어른이라면 한 걸음 물러서서 재기 발랄한 청년 세대 간 대화의 장을 지켜보며 가끔씩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것으로 족해야 할 텐데. 여전히 촐랑거리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는 마치 오디션 심사위원이라도 된 마냥 멤버들의 글마다 제목 감별을 하고 총평을 늘어놓는다.
만약 내가 M 군이나 P 군처럼 훤칠한 키의 훈남이거나, 또 다른 P 군처럼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무장한 뇌섹남이라면 모를까.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서울 전세에 중소기업 다니는 아저씨가 달마다 한 번씩 꼬박꼬박 모임에 나와서 영양가 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게 그들의 눈에 달가울 리 없을 터. 내가 던지는 한 마디에 터지는 웃음이 웃어른에 대한 예의 또는 연민인 줄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오늘도 나는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고 다음 날 술에서 깨면 후회막심 할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론 이미 산산조각 난 세상에서 굳이 영포티마저 핀셋으로 콕 집어 올려 희화화하는 세태가 속상하기도 하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 이런 형태의 갈등이 갑툭튀 하면 어느 한쪽 만의 잘못은 아닐 텐데. 하지만 영포티를 둘러싼 논쟁에서 만큼은 나를 포함한 올드 포티의 책임이 더 크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막차라는 생각에 서둘러 올라탄 사다리는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고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포기하라고 강요받는 그들의 분노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여기에 그들이 가진 거의 유일한 무기인 '젊음'마저 빼앗아 가려는 행태가 곱게 보일 턱이 없다.
서울 전세에 중소기업 다니는 아저씨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소위 86세대라고 불리는 선배들의 도덕적 우위와 압도적인 숫자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하고, IMF 외환위기 전후 무거운 등록금을 짊어지고 대학에 들어가 캠퍼스의 낭만 대신 스펙 쌓기를 시작한 것도 우리 때 즈음부터일 터인데. 이제 애들 좀 키워 놓고 미뤄 두었던 취미나 자기 계발을 해 보려니 집과 직장을 벗어난 세상의 시선이 달갑지 않아 대략 난감할 뿐. 그런데…
스냅백에 스투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돌아가는 건 개인 취향이고 청년들 틈바구니에서 신조어를 쏟아내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도 각자의 역량에 달린 거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뭔가 개운치 않다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열몇 살 어린 여성 분의 눈인사를 나에 대한 호감으로 받아들여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게 심쿵할 수는 있겠다. 허나 눈인사 하나를 지렛대 삼아 아직도 내가 먹힌다고 착각하는 순간 영포티라는 면류관 위에 스윗한 가시덤불마저 덧씌워질터.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자는 얘기냐고 반문하면 나라고 정답이 있을까만. 영포티가 될 바에야 좀 더 어른다운 아저씨가 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언제까지고 내가 될 필요는 없을 터.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너른 마당이라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믿고 따를 만한 어른이 없다고 푸념하기보다 우리가 한번 찐어른이 돼 보자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핀다면 언젠가는 한 뼘 커진 스스로의 모습에 조금은 다가서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 한들 그들이 먼저 선뜻 다가와 주기를 기대치는 말자. 우리보다 고달픈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성급한 위로나 싱거운 농담을 던지기보단 입을 닫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고민해 보자. 혹여 그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구하는 순간이 온다 한들 우리가 그만한 내공을 쌓아 놓지 않았다면 그 또한 민망할 것을. 정 빛나는 청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면 신촌 뒷골목 담배 연기 자욱했던 시저스 바로 걸음을 옮기자. 이십여 년 전 그때처럼 김 빠진 레드락 한잔에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목놓아 부르다 보면 혹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옛 친구와 재회할 수도. 그렇게 위태위태했지만 무모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우리들이 응답할 런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