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

by 방재원

전날 밤 아버지 식도암 판정 소식을 듣고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는데 침대 한 켠 오도카니 앉아 있는 딸아이의 굳은 표정에 정신을 차려야 했다. 늘 꽃분홍 드레스에 나비 머리띠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재잘거리며 등교하던 아이였는데 오늘 만큼은 그럴 수 없나 보다. 휠체어를 탄 아이의 뒷모습에 조용한 긴장감이 감돈다. 눈 시리게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차라리 비나 오지 못난 생각이 삐쳐 나온다.


운동장은 이미 형형색색의 반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과 또 그만큼 숫자의 학부형들로 가득 차있다. 스피커 방송이 나오고 아이들이 반 별로 2열 종대를 맞추는 동안 부모들은 썰물처럼 운동장 뒤편 천막 쪽으로 빠져나간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이도 맨 뒷 줄에 자리를 잡았고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나는 몇 걸음 물러서 어정쩡하게 서 있다. 뒤를 돌아보니 인파 속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아내가 언뜻 보인다.


구령에 맞춰 하나 둘 체조를 하는 동안 어느새 아이의 표정도 풀어져 있다. 여느 때처럼 두 팔을 힘차게 뻗고 제 자리에서 발을 구른다. 전체 대열이 앞뒤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동선에 맞추어 휠체어를 조금씩 밀어준다. 체조가 끝나는 동시에 케데헌의 <골든>이 울려 퍼진다. 아이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떼창을 불렀고 운동장은 어느새 콘서트장이 돼 버린다. 부딪힐까 염려되어 휠체어에 다가서려는 데 딸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한 발 한 발 살며시 땅에 내딛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 손을 붙잡고 지면을 박차 뛰어오른다.


We're going up up up. It's our moment.

You know together we're glowing

Gonna be, goona be golden...


정신없이 아이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다가 뒤늦게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장면을 아내가 꼭 봐야 하는 데 조바심에 두리번거리다 담장 벽에 얼굴을 파묻고 들썩이는 앙상한 어깨를 발견한다. 이제 됐어, 된 거야. 아내의 등이 바스러질까 토닥이던 중 노래는 끝이 나고 아이들은 반 별로 자리를 이동한다. 운동장 한 가운 데 홀로 주저앉아 있는 딸아이. 멀찌감치 떨어져 가지런히 접힌 채 모로 누운 휠체어. 아내를 달랠 겨를도 없이 다시 아이에게 뛰쳐 간다.


입학식 날을 빼곤 학교에서 한 발짝도 걷지 못했던 아이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다음은 줄다리기 시간.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굵은 밧줄을 잡으러 친구들이 재차 뛰어나가는 동안 아이는 골든을 흥얼거리며 순식간에 흩어지는 친구들의 그림자만 바라본다.


린아, 우리도 나가서 같이 할까?


고개를 가로 짓는 아이를 외면하고 이미 대열을 갖춘 무리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왼 팔로 자세를 고정시킨다. 머뭇거리는 아이의 손에 밧줄을 쥐어 주고 나도 살짝 밧줄을 잡는다. 반대편으로 끌려갈 때마다 밧줄을 쥔 오른 손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백팀 승리!


활짝 웃으며 땀을 훔치는 아이가 뒤돌아 보기 전에 밧줄을 슬며시 내려놓고 힘껏 들어 올려 안는다.



*


그날 오후. 이사 문제로 부동산에 가서 상담하던 중 전화를 받으러 나간 아내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에 나와 보니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는 아내의 눈이 이미 벌게져 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첫째가 수업 시간에 나무 블록으로 같은 반 여자애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렸고 선생님이 제지하는 순간까지 서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여자 아이 부모님이 학폭으로 신고하여 교육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두더지 게임 하는 거 같아.


간신히 담임 선생님과 전화를 마친 아내가 표정 없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의 손을 잡아 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난날 내가 아들에게 퍼부었던 폭언과 손찌검이 검은 연기가 되어 아들의 몸속 곳곳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채웠으리라. 포화상태에서 갈 곳 잃은 분노가 엉뚱한 데서 터져 버렸는데 회한에 빠질 수도, 자책할 겨를 조차 없다.


일단 내가 린이 데리고 수영장 다녀올게.


한 시간 내내 조금도 쉬지 않고 물살을 헤치는 아이. 이 아이가 조금 전까지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애가 맞는지 매번 내 눈을 의심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물살을 가르는 속도는 빨라진다. 선생님의 만류에 잠시 물안경을 벗고 숨을 고르는 아이가 유리창 너머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렇게 오늘도 조각난 마음을 하나씩 끼워 맞춘다.



*


아들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애써 몸을 일으키려는 아내를 뒤로하고 큰 애 방을 노크한다. 컴컴하고 눅눅한 공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벽에 기대어 몸을 접은 커다란 형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아들.


나가.


아빠가 잘못했어. 미안하다.


...


*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간단한 시술로 목구멍 안 쪽 동전 크기의 점막 하나만 떼어내면 된다고 했다. 수술 후 아버지는 이전처럼 헬스장에서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을 하셨고 곧 사무실로 출근도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림프 쪽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깨끗이 털어내려고 찾은 병원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고개를 떨구셨다. 그렇게 지리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고 하루 십여분 치료를 받기 위해 5주일간 매일 두 시간씩 택시에 몸을 실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조금 일찍 병원에 가서 휠체어를 빌리고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들의 발라드를 들으며 방전된 마음을 충전했다. 그렇게 노오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고 또 흩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


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막내는 학년이 끝나도록 학교에서 걷지 못하고, 이제 막 방사선 치료를 마친 아버지는 침도 삼키기 버거워하신다. 큰 애의 학폭 심의는 이미 우리 손을 떠나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언젠가부터 마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면 나도 모르게 웅얼거린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잠을 청하러 눈을 감을 때마다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꿈틀거리지만 기어코 햇살은 블라인드 틈새 사이로 나를 깨운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아니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꾸역꾸역 하루를 집어삼키며 끝끝내 삶을 이어갈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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