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발라드
폭풍처럼 여러 일들이 몰아쳤던 지난가을, 매주 화요일 저녁 [우리들의 발라드]를 시청하면서 쩍쩍 갈라진 마음을 봉합하곤 했다. 학창 시절에 흥얼거리곤 했던 그 시절, 그 노래들을 지금의 감성과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서 부르는 10대와 20대 친구들을 보면서 흐뭇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민수현 양의 <소주 한잔>, 김범석 군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지훈 군의 <그녀의 웃음소리뿐>까지... 기라성 같은 원곡 가수들을 순삭시켜 버리는 그들의 도발(?)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래, 아무리 불멸의 명곡이라도 시간의 흐름에 맞춰 변주될 수 있는 거지, 우리 네 삶처럼 말이야.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우리들의 발라드]가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재미는 심사위원과 방청객(둘 다 탑백귀라고 칭한다.)이 각각 똑같은 비중의 한 표씩 행사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정재형이 듣는 귀와 나 같은 발라드 애청가들이 듣는 귀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말 그대로 '우리'들의 발라드를 뽑는다는 취지에 걸맞은 민주주의(?)적 투표 방식을 채택한 제작진의 한 수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쇼츠의 시대, 참가자들의 노래만 콕 빼서 들을 수도 있었지만 탑백귀 대표로 나온 정재형의 따끔한 조언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성악을 공부한 홍승민 군이 1라운드 곡을 마친 후 정재형은 뿔테 안경 너머로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발라드에 어울리는 딕션과 프레이즈에 대해 고민해 보았는지 승민 군을 저격(?)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저 친구는 다음 라운드 진출은 어렵겠구나 예상했는데 자신만의 단단함과 호소력으로 TOP 6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진정한 성장케의 모습이랄까. 훤칠한 키와 우유빛 미소 앞에 괜한 거부감(또는 열등감)이 들었던 나조차 어느새 승민 군이 4라운드에서 부른 <미아>를 반복해서 들으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재차 묻게 된다.
또 다른 탑백귀 대표 박경림의 감상평을 통해 다른 측면에서 어른의 태도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악플과 공황장애에 시달린 최은빈 양의 <Never Ending Story>를 들으면서 온전히 그녀의 입장이 되어 함께 오열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연 팔이와 진부한 클리셰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꾹꾹 진정성을 눌러 담아 은빈 양에게 말을 건네는 박경림의 조심스러움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래, 맞아 굳이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진심을 담은 한 마디이면 충분한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편에 서서 공감해 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을.
정작 내 마음을 머뭇거리게 만든 건 다름 아닌 MC 전현무의 존재였다. 특유의 깐죽거림과 유려한 진행으로 무리 없이 파이널 라운드 생중계까지 이끄는 모습은 그동안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숱하게 봐왔던 모습인데 무엇이 내 마음을 멈칫하게 한 걸까? 아,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게 저거였구나. 민망할 정도로 뒤늦은 자각이 아니었나 싶다. 유튜브와 OTT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구닥다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새 천년이 오기 전에 대학에 입학한 라떼는 '신문방송학'이라는 전공이 있었다.
그저 겉멋 들어, 근사하게 보여 시작한 신방과 대학생 시절에 동기들은 PD, 기자, 아나운서 등 각자의 꿈을 향해 소위 언론고시 준비에 매진했다. 내가 너무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그 시절, 나는 친구들 주위를 배회하면서 방송국 입사라는 좁은 길을 통과할 수 있을지 재 보기만 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하는지 여부는 결국 내가 내리는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보다는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승부를 걸어 볼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나름의 계산이 선 후에 결정하고 밀고 나가는 것. 그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도, 조리 있는 말주변도 갖추지 못했던(그랬다고 생각했던) 나는 책 한 페이지 펼쳐 보지 않은 채 너무 쉽게 방송국 입사라는 길을 포기했다. 군 생활 후 경영학을 복수 전공으로 택하면서 이유도 모른 채 설레었던 신방과 시절은 희미한 기억 너머로 사라졌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를 소환하게 된다. 부리부리한 눈매, 작은 키, 넉넉한 뱃살까지 갖췄다고 해서 누구나 전현무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배포와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상황을 티 안 나게 대응하는 것 또한 그동안 켜켜이 쌓아 왔던 시행착오와 자기 관리의 결실이리라.
대학 새내기 그때로 돌아가서 언론 고시 준비를 한다고 한 들, 당시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3사 방송국에 입사해서 탄탄하게 경력을 쌓고 멋지게 프리 선언을 한 후 이십 년이 넘도록 치열한 방송 현장을 누비고 다닐 가능성은 말 그대로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 일을 해 보기 위해 최소한의 시도라도 해 보았냐고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불안정하고 피폐한 여정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평탄하고 넓은 길로 우회하거나 버티고 버티다가 이도저도 아닌 신세가 돼 버렸을 수도. 가 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 길 위 에는 가파른 골짜기와 쉬어 갈 수 있는 샘물, 별수 없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가시 덩굴과 까만 밤공기를 마시며 잠들 수 있는 해먹이 어우러져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 모든 걸 너무 일찍 소거해 버려, 한번뿐인 인생을 너무 손쉽게 살아내 버려서 지금 누리는 일상을 저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