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ble

영화 <만약에 우리>

by 방재원

만약에 말야, 우리가 반지하방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까?




십 년 만에 마주한 정원(문가영 님) 앞에서 은호(구교환 님)는 반추의 끝자락을 붙잡고 묻는다. 손바닥만 한 햇빛이 전부였던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둘의 이별을 가난 때문이라고 퉁 쳐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일어 서려할 때마다 발목을 붙잡은 건 결국 돈이었다. 건축가의 꿈을 키우는 정원의 편입 시험 뒷바라지를 위해 온종일 은호가 감옥 같은 사무실에 붙잡여 있는 동안, 정원은 은호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려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과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모델하우스를 지킨다. 어둑했지만 안온했던 둘 만의 보금자리는 눅눅한 침묵으로 물들어가고, 비에 젖은 정원이 타고 있는 지하철에 은호가 몸을 싣기를 주저하면서 둘 만의 이야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관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져 가는 오늘, <건축학 개론>의 10년 뒤 버전쯤으로 보이는 사랑 이야기 한 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건 아마도 각자의 은호와 정원을 소환하고픈 아련함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것 만으로 묵직하게 저려오는 마음을 설명하기는 부족한 것 같다. 가진 게 없으면 연애마저 미루라는 심상한 공기를 뚫고 오늘의 청춘들이 힘겹게 내딛는 한 걸음. 그 맞은편에 누군가에게는 꽃길로 보였을 내가 남긴 발자취. 얼마간 시간 차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두 길이 지평선에 가까워지면 조금은 좁혀 질까 싶었는데, 입을 벌린 젓가락처럼 점점 더 멀어져 가는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다.


*


5층짜리 주공아파트 단지에서 함께 나고 자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붙어 다녔던 우리는 대학까지도 같은 곳에 합격했다. 부모님이 내주신 등록금 덕분에 강의 시간에 잔디밭에 모여 앉아 짜장면에 고량주를 마시는 동안, 친구는 휴학계를 내고 동네 곳곳에 전단지를 붙이며 쉼 없는 과외 전선에 뛰어들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녹색 병 로고가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프레쉬하게 바뀌어 가는 동안에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그의 분노는 농도를 짙어만 갔다.


조금씩 변주되지만 변함없는 종착지를 향하는 그의 레퍼토리를 듣는 게 지겹지는 않았다. 돈이 있어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뻔하디 뻔하지만 잠시 멈추어 되짚어 보면 이보다 더 섬뜩할 수 없는 그의 푸념 앞에서 나는 하릴없이 소주잔만 홀짝 거렸다. 20년, 30년을 넘어서 40년 지기로서 응당 감당해야 할 의무감, 속히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응원하는 마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안녕이라 그랬어>를 펼치며 의식 아래 꼭꼭 숨겨 두었던 또 하나의 민낯을 끄집어낸다.


내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그에겐 땀이 절은 시간을 통과해 쟁취해야 했던 그 무언가였다는 걸. 내가 그 친구의 처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남루한 안도감 말이다.



*


새하얀 벽과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 방 안 가득한 장난감 더미까지.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과외 선생으로 분투하면서도 부동산 공부를 놓지 않고 주말마다 멀리 지방까지 임장을 다녔던 친구는 결국 서울 근교 자가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집들이 겸 들른 그의 안식처 곳곳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재원아, 지금이라도 집 사야 돼.


언제부턴가 그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도, 불만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대신 양가 부모님의 건강과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갈 아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던 청춘이라는 시간. 내가 머릿속 회로를 재배열한다는 핑계로 일더미 속에 숨어 있는 동안, 그는 외면하고픈 현실 위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하나하나 자신만의 성을 쌓아 왔다. 한 사람이 서울 전세 사는 대책 없는 다둥이 아빠로 버둥거리는 중에, 다른 한 사람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와 상처를 매만지며 숨을 고르는 중이다.


왜 이렇게 항상 저자세로 구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는 게 자랑이 될 수는 없을 텐데 다른 걸 내세울 게 없으니 겸손한 척이라도 하려는 얄팍한 마음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한다. 매번 자기 검열의 경계선에서 서성거리면서도 결국 도착한 지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식적으로 보이더라도, 아니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기울어진 운동장, 멀찌감치 떨어진 출발선 위에서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온몸으로 맞바람을 맞으며 달려온 한 사람을 평생의 친구로 삼았기에, 지독히도 운이 좋았던 다른 한 사람은 마땅히 몸을 낮추어야 한다. 같은 하늘 아래 갖가지 잣대로 갈라 이 땅에서 각자의 결핍을 껴안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최소한 그 '우리'라는 감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뒤꿈치를 든 채 세상이라는 좁다란 통로에 발을 들여놓는다.


*


새벽빛이 출렁이는 호치민의 강변에서 은호는 끊임없이 만약에를 되뇌인다.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려는 그에게 정원은 눈가에 맺힌 웃음 너머로 안녕이라 말한다.




그때 내 집에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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