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 with "WHY"] 를 읽고...
벌써 이 책이 나온 지 15년이 되었구나. 이전부터 언젠가 한 번은 읽어 봐야지, 다짐만 되풀이하다 이제야 책을 펼쳐 들었다. 본래 제목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아예 제목마저 원저와 동일하게 바꾼 모양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왜'라는 질문부터 시작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지고 지속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나의 'WHY'는 무엇일까라는 질문 앞에는 여전히 서성거리게 된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대의명분' 정도 될 것 같은데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가. 이십 년 가까이 사업을 해 왔음에도 하루하루 닥치는 일을 처리하는 데만 급급했다.... 고 생각했는데, 책상 벽면에 떡 하니 붙여진, 2007년 어느 날에 작성한 자기 선언문이 눈에 들어왔다. 2030년 연 매출 1천억 원 규모의 친환경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맙소사, 해가 지나면 이제 겨우 4년밖에 안 남았는데, 여전히 회사 매출은 호기롭게 써 내려간 숫자의 1/10도 채 못하는 데... 며칠 밤샘해도 버틸만했던 그 시절의 나를 소환하며 민망함과 약간의 그리움이 교차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날 내가 세웠던 비전은 WHY와 HOW 가 빠진 채 WHAT 만 덩그러니 담겨 있었다. 어떤 목적으로,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친환경 솔루션 기업을 만들겠다는 내용은 없이 연 매출 1천억 원에 방점을 찍었으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 솔루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이 있었는데, 이미 친환경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이보다 더 진부할 수 없는 표현에 헛웃음마저 난다. 코팅까지 해서 스카치테이프로 단단히 붙여 놓은 A4 종이를 뜯어 버리려고 손을 뻗다가 몇 가지 상념에 노랗게 주름진 테이프만 꾹꾹 누르고 있다.
그래, 이런 거라도 써 놨으니까 여태까지 버틴 거지 라고 자위하면서도 목표했던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현실에도 무덤덤한 나를 마주하며 진정 회사를 키울 마음이 있긴 있었던 건지 회의감을 피할 길이 없다. 한참 늦었지만 앞으로 남은 날 동안 지지고 볶을 사무실에서의 일상을 앞두고 나에게 WHY 가 있기는 한지, 18년 전 끄적거려 보았던 회사의 미래가 진짜 내가 원했던 WHAT 은 맞는지... 주섬주섬 퍼즐을 맞춰 본다.
아이들과 각양각색의 퍼즐 맞추기를 해 본 덕분인지 몇 가지 요령이 생겼다. 한쪽이 반듯한 퍼즐로 가장자리부터 채워 나가기, 글자나 특이한 무늬가 있는 퍼즐을 따로 모아서 그 친구들끼리 먼저 짝을 지워 보기, 민무늬의 똑같은 색 퍼즐 조각들은 뒤로 밀어 두기...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퍼즐 조각들은 별수 없이 90도, 180도 방향을 바꿔 가며 숭숭 구멍 난 공간에 땜질하거나 이조차 여의치 않으면 모양이 맞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쑤셔 넣기도 했다.
연 매출 1천억 원의 친환경 솔루션 기업, 그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절박함에 사로잡혔던 그 시절 내가 무리해서 어떻게든 끼워 넣으려 했던 퍼즐 조각 하나였다. 어떤 식으로든 목표를 세우면 일단 달려갈 동력이 생길 테니까, 조바심 덩어리였던 그때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15평 남짓의 사무실을 뛰어다니며 나 자신을,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진정성이 결여된 목표, 언젠가는 사그라들 열정, 어떻게든 이익을 짜내야 한다는 절실함들이 어우러져 그날의 비전은 빛바랜 종이로 모니터 뒤편 한쪽 벽 귀퉁이로 밀려갈 수밖에.
18년의 세월이 나를 바꾸어 놓은 걸까? 현실을 인정하고 안주하려는 걸까?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과 이익은 회사의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지만 더 이상 이전만큼 숫자에 매달리지 않는다. 굳이 친환경이 아니더라로 고객사와 지금껏 쌓아온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보다는 많게는 20년 가까이 함께 일해 온 사람들과 남은 시간을 채워 가고자 하는 바램이 더 커졌다. 다정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일하는 조직. 내가 맞추고자 했던 퍼즐 한 조각은 이게 아니었을까.
우리 생이 마지막을 향해 한 걸음씩 재촉하듯 회사 또한 결국에는 끝을 마주할 것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는 조율되지 않은 바이올린을 켜듯 높다란 산봉우리와 까마득한 골짜기 사이를 반복하여 통과하리라. 그 길 끝에 지금 사무실에 자리한 우리가 서로를 다정한 동료로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를 어쩔 수 없이 몸부림치는 허허벌판의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삶을 동행한 최소한의 울타리로 회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