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일정 연기를 권유하셨을 때 솔직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일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서 굳이 날짜를 늦추려고 하시는 이유가 빤히 보였거든요. 하루가 지났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 한 구석 찜찜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다만 한 걸음 떨어져서 곱씹어 보니 매니저님 입장이 이해가 되고 좀 짠한 마음도 들더군요. 동기가 무엇이든 저보다 제 몸을 더 걱정해 주신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믿기에 여기서 중단하더라도 예의만큼은 갖추고 싶었습니다. 그게 어른이 되어 버린 제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이렇게 체계적인 스파르타 프로그램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원기둥 모양의 통에 들어가서 한 시간 넘게 온몸을 벨트로 꽉 조이고 나니 말씀하신 대로 몸이 가벼워지긴 하더군요. 제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관리 전후에 인바디로 숫자를 비교해서 보여 주시니 어디 숨을 데가 없었습니다. 매일 식단을 AI카메라로 찍어서 올리고 수면, 운동, 수분 섭취량까지 앱에 기록하는 게 좀 번거롭긴 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 또한 익숙해지더군요. 다른 것 보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간식을 대신하고 야식을 피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 때마다 매니저님께서 "우리 방재원 님..."으로 시작하는 폭풍 칭찬을 해 주셔서 당황스러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칭찬을 받아 본 지가 까마득해서 일까요?
처음 뵐 때 말씀 드렸지만 해야 한다는 당위로 짓누를 뿐, 해야겠다는 의지나 하고 싶다는 욕구가 받쳐 주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든 지속할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살 빼기가 저에겐 그런 것이었습니다. 수면 무호흡이 심해서 살을 빼거나 양압기를 끼고 자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지요. 잠 들 때는 분명히 끼고 잤는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내평겨쳐져 있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결국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다이어트를 또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렸네요. 수년 전에 10킬로 정도를 감량했다가 삼 개월 만에 원상 복구하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준, 제 몸뚱아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한 데 말이죠.
살을 빼려는 의지나 욕구가 없다면 루틴을 바꿔 보자는 매니저님 말씀에 속는 셈 치고 따라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저로서는 강제로라도 동기 부여를 해야 하기에 마지못해 수긍하고 거금을 치렀던 거죠. 눈 딱 감고 결제한 금액을 관리 횟수로 나누어 보니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가이드를 따를 자신이 없어서 간식 끊기와 따뜻한 물 마시기 두 가지만 해보겠다고 선포하고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는데... 어제 매니저님과 통화한 후에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고객의 몸무게 변화에 따라 매니저님 업무 성과가 달라지고 매월 말에 달성해야 하는 고객 별 타겟 지표가 있다는 것. 이제 경우 세 번 관리를 받았을 뿐인데 굳이 매니저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월말이 다가올수록 초조해하시는 모습에 제가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관리 대상에서 저를 빼 달라고 말씀드렸던 건데 본사 시스템 상 그런 건 안 된다고 하시니... 인바디 측정기에 올라갈 때마다 제가 죄인이 돼 버린 것 같아 슬며시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 저에게 1월 마지막 주 금요일로 예정된 관리를 미루자고 하시니 제 중량 변화가 매니저님이 달성해야 할 목표에 미치지 못해서 그러시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매일매일 제 식단과 몸무게 변화를 체크하면서 스트레스받으실 매니저님이나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허기짐과 죄책감 사이를 오가는 저나 동병상련이 아닌 가 싶습니다. 첫 직장에서 월별 매출 숫자를 맞추지 못해 여기저기서 쪼여야 했던 아득한 추억도 떠오르구요. 환한 웃음과 열정 가득한 조언으로 저를 맞아 주셨던 매니저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증도 하차하면 혹 매니저님이 페널티라도 받으시는 게 아닐까 염려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 닿지 못할 하소연을 하고 있네요.
불룩한 뱃살과 둥그런 턱선... 거울 속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 봅니다. 라캉이 그랬던가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날씬한 몸으로 타인 앞에 서겠다는 바램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데, 제 삶이 시들한 게 혹 제 몸이 제대로 서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뒤척이게 됩니다. 또래 누구보다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면 이삭 토스트 한 입의 달콤함에 너무 쉽게 제 몸을 허락했던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요.
그렇게 좋아했던 공차기를 한지 얼마 안돼 숨을 헐떡이고, 바닥을 치는 몸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발현할 때면 자조하곤 합니다. 내 몸이 내께 아닌데.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십여 명의 직원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결국 타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지금이라도 내 몸을 챙기려 하는 스스로가 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강한 몸을 가꾸어 남은 삶을 내 뜻대로 살아보리라는 소망은 온 데 간데없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의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서요. 그렇다 하더라도 따라 주지 않는 몸 때문에 제 일상을 다이어트하는 건 그만하고 싶네요. 얼마나 감량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으렵니다. 그게 오랜 시간 견뎌 준 제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일 테니까요.
넋두리가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 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꼼꼼한 지도 편달 부탁 드리구요. 새로운 달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p.s. 제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니요...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매니저님께서 어떻게 아실 수 있겠어요. 매니저님만 믿고 끝까지 한번 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