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의 삶

by 방재원

반년쯤 전 글쓰기 모임 뒤풀이 때 옆 자리에 앉은 멤버 분이 물었다.

재원 님은 가치관이 뭐예요?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머릿속이 하얘져서 주억거리다 마는데 취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이 튀어나왔다.

그거야,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거죠.

붙임성 좋은 그녀는 같은 질문을 다른 멤버들에게 속사포처럼 던졌고 각자의 답변이 이어졌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 가는 거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야죠.

...


술김에 스스로 내뱉은 한 마디를 지난 몇 개월 간 곱씹고 있다.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건 분명 미덕이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에 놓을 만큼 중요한 걸까? 서로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다르기에 갈등이 생기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그건 못 견디겠으니 모두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겠다는 비겁한 스탠스는 아닌가? 누군가 나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다면 내가 어디까지 조심하고 책임져야 하는 걸까? 배려와 눈치 보기의 불분명한 경계선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그 행렬 중에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넘어 오롯이 내가 바라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


법조문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사업을 궤도에 올려놔야 했으며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크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고 믿었다. 순차적으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 왔을 뿐인데... 피로의 역치가 바닥을 친 퀭한 눈과 삶의 치열함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턱선, 지향점을 잃고 곳 없이 흐느적거리는 뱃살까지. 깜깜한 밤 거울 속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펌프를 구동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비어 있는 상태에서 가동을 시작하면 고속으로 회전하는 임펠러로 인해 내부에 열팽창이 발생해서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동안 고객사 현장에서 부지기수로 봐온 공회전(dry run) 말이다. 하고 싶다는 욕구의 마중물 없이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만으로 버텨온 일상에 생기가 있을 리 없다. 너무 잦은 공회전으로 상할 대로 상해버린 몸뚱아리를 가지고 이전처럼 무턱대고 될 때까지 해 보는 건 더 이상 유효하지 다.


거를 의무의 연속으로 박제해 버린 나에게 정언명령을 따르라고 강권하는 임마누엘 칸트는 너무나 익숙하다. 평생 동안 고향에서 한 발 치도 떠나지 않고 하루를 시간단위로 쪼개 기계처럼 무한 반복해 온 사람. 위대한 철학자의 발자취를 내가 좇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퍽퍽한 삶의 결은 닮지 않았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의 생애를 한번 더 들춰 보기 전까지는.


지금부터 삼백 년 전 오목한 가슴, 뒤틀린 척추, 좌우 비대칭의 어깨를 갖고 태어난 아이. 아홉 형제 중 절반을 어린 시절 떠나보냈던, 병약한 유전자를 타고난 그가 80세까지 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일 오후 두 시간씩 산책을 하는 중에 그는 늘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찬 공기가 그의 허약한 폐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50대 후반 <순수이성비판>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그는 오랜 시간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사유를 벼르고 또 다듬어 왔다. 남들이 보기엔 고루하고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을 간소화함으로 신체적 약점을 보호하고 그를 사로잡았던 도덕 법칙을 체계화하는 데 매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런 칸트도 홀로 점심을 먹은 적은 드물었다고 한다. 1일 1식을 실천해 왔던 그는 매일 오후 한 시가 되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포도주를 곁들어 만담을 나누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이는 그에게 스스로 허락한 두 시간의 쉼과 여유. 그는 강박적으로 학문에만 몰두한 고지식한 지식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워라밸을 찾기 위해 애썼던 오늘의 우리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삶을 욕망이 거세된, 모노톤 빛깔의 네모난 퍼즐 조각을 묵묵히 맞춰온 나날이었으리라 지레짐작으로 단정하고 이에 빗대어 나의 지난날을 자조하는 것은 생각의 흐름이 막힐 때마다 챗 GPT에게 답을 묻는 것만큼 쉬운 선택일 수 있겠다. 허나, 그 누구의 인생도 똑같은 모양, 똑같은 색상의 퍼즐로만 짜여 있지는 않을 터. 눈을 붙이기 전 어두운 거울에 비친 퀭한 눈의 아저씨에게 한번 더 물어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니?


마중물이 없다고 펌프가 항상 고장 나는 건 아니다. 평상시 구동 후 세척을 하고 윤활 정비를 해 둔 펌프는 공회전을 하더라도 우물에서 물을 빨아올릴 때까지 버틸 힘이 있다.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라도 잘 해내고 싶다는 욕망과 무언가 해냈을 때 샘솟는 뿌듯함이라는 물길을 탄다면 해 볼만하다. 지금 와서 내가 해내야 했던 학업과 일, 또 육아를 핑계로 나를 당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희생양으로 포장하는 건 간단하지만 무리가 있다. 분명 나는 시험을 잘 봐서 인정받고 싶었고, 성취와 유대감을 양분 삼아 이십 년 간 사업을 해올 수 있었다. 또한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각양각색의 희로애락을 통과하는 중이다.


몸속 회로를 느릿하게 흐르는 끈적한 액, 빈번하게 지붕 뚫고 하이킥 하는 포도당, 미처 연소될 틈 없이 누적된 시간을 성실히 쌓아 올린 지방간. 잦은 공회전을 탓하기 이전에 오랜 시간 방치되어 불어난 몸이 문제라는 걸 몰랐던 게 아닌데. 남은 수명마저 다이어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을 빼야만 한다. 요요로 점철된 실패의 기억도,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슬픈 진실도 핑계가 될 수 없다. 건강한 몸으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 앞에선.


너만 걸을 수 있으면 난 어떻게든 돼도 좋아

주문을 외우는 나에게 아이가 줄넘기와 호루라기가 든 상자 하나를 내민다.

올해는 학교에서 걸을 테니까 대신 아빠는 살 빼.

생일 축하한다는 한마디 없이 시크한 표정만 던지고 아이는 표표히 뒤돌아선다.

새파란 저녁 공기를 뚫고 내딛는 달음박질에 몇 프로의 당위와 의지, 그리고 욕구가 담겨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언젠가 아이가 온전히 하루를 걷게 될 그날, 무너진 몸으로 그날을 맞이할 수는 없기에. 살을 빼라는 아이의 정언 명령 앞에 무릎을 꿇고 운동화 끈을 다시 한번 고쳐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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