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YOUR ENERGY!"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조명, 듣기만 해도 호흡이 가빠오는 템포의 힙합 음악, 붉은색 기둥과 이를 촘촘하게 둘러싼 그물, 그리고 곳곳에 번쩍이는 대형 모니터까지... 여기는 UFC 격투기 시합이 벌어지는 올림픽 공원 체조 경기장... 이 아니라 아이파크 고척몰 A동 1층에 자리한 키즈카페다. 이름은 "캘리 클럽".
십여 년간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각양각색의 키즈카페를 섭렵했다고 자부해 왔다. 뽀로로, 타요와 같은 캐릭터 카페, 레고 만들기 카페, 대형 트램펄린과 각종 구기운동이 결합한 스포츠 카페, 그리고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야외 피싱 카페까지... 이런 나에게도 이곳의 풍경은 생경했다. 로프를 잡고 자기 키보다 두 세배는 높아 보이는 언덕을 넘고, 포복 자세로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그물을 통과하고, 권투 연습장에서나 볼 수 있는 펀치백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들이 기어코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로 세로 10 센티미터 사각형 모양의 전자패드. 각자 팔을 최대한 뻗어서 손목에 착용한 태그 팔찌를 패드에 찍으면 꺼진 화면에서 무지개 모양의 빛이 들어온다. 비로소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이다.
태깅(tagging)에 성공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중앙 기둥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주시한다. 누적 점수 기준으로 1등부터 10등까지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게임에 참여한 시간까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10초 단위로 바뀌는 등수를 따라 아이들의 얼굴에도 희비가 번갈아 엇갈린다.
"총점수가 제일 높으니까 내가 일등이야."
"너는 나보다 삼십 분 먼저 시작했잖아. 분당 태그 수는 내가 앞섰어."
"언니 오빠는 키가 크잖아. 나이대별로 하면 7살 중에는 내 점수가 제일 높아."
제각각 펼치는 논리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아이들은 다음번 태깅을 위해 각자의 목표물로 달려간다. 영원한 일등도, 꼴찌도 없다는 걸 일찍이 체화한 각자도생의 현장이다. 이쯤 되면 상황은 아이들 놀이가 아니라 부모 간 경쟁으로 변질된다. 키가 닿지 않는 높이에 위치한 패드에 태깅하기 위해서 번쩍 아이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젊은 엄마, 아빠가 대신 손목 팔찌를 들고 총알 같은 속도로 패드를 찍고 다닌다. 공정한 경쟁은 허울에 불과하고 체력 좋은 엄마, 아빠를 둔 아이 이름이 화면 상단에 오른다. 아빠찬스, 엄마찬스는 이곳에서도 유효하다. 전투력이 떨어지는 아빠를 둔 딸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몇 해 전부터 공정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달라는 청년 세대의 요구는 타당하다. 그런데 어느 지점까지 공정의 잣대를 적용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태어난 환경과 개인의 역량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 다 같은 선 상에서 동시에 출발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기에 결국 우리가 합의한 수준은 객관식 문항으로 수렴된다. 적어도 가치를 측정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숫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니터 화면에서 수시로 바뀌는 점수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면을 지켜보기 어지러워 눈을 감는다. 불현듯 어린 시절 텀블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주 한 번씩 한 할아버지가 커다란 원 모양의 트램펄린을 가져오셔서 동네 공터에 설치하셨다.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고 친구들과 달려가서 누가 높게 뛰나, 누가 공중에서 더 멋진 묘기를 부리나 시합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치면 대자로 누워서 파란 하늘 위 떠다니는 구름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여기저기 찢어진 누더기 상태인 데다 스프링이 나간 데가 많아서 아무리 뛰어도 높이 솟구치기 어려웠지만 더 이상 바랄 게 없었게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슬며시 뜬다. 땀범벅이 된 딸아이의 등 뒤로 숫자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