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건물 소방 시설 관리 담당자를 새로 정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엘리베이터 이용을 못해요."
전혀 예상치 못했다. 30여 분 간의 무거운 침묵 속에 이어진 대화, 눈을 질끈 감고 꺼냈던 이야기, 당황스러운 눈빛과 떨리는 손...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멀지 않은 미래에 회사를 떠나게 될 직원 분이 면담을 마칠 즈음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었다.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 되풀이했는데 예기치 못한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답해 버렸다.
"...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 온 지 17년, 그분은 내 손으로 처음 뽑은 직원이었고 16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금융 위기로 달러 값이 1,500원을 오르내리던 시절. 기계 수입을 업으로 하는 우리 회사는 미리 정해진 단가 계약 탓에 물건을 팔 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이 또한 지나갔으며 2~3년의 암흑기를 지나 회사는 성장 궤도에 올랐다. 돌이켜 보면 조선과 석유화학 시장 활황 덕분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사업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미중 무역 분쟁을 전후로 사업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나 또한 언제부턴가 안주하기 시작했다. 결혼과 육아, 예전같지 않은 몸 상태... 변명을 들자면 끝이 없지만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강박과 불안이 잦아드는 만큼 내 안의 치열함 또한 사그라들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 인생의 장애물로만 여겼던 어두운 기운들을 동력 삼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내가 만든 굴레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스스로를 몰아붙일 자신이 없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당연한 명제로 삼는 대신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엇보다 지난 십 년간 동고동락했던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연결감.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가 이후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우리 회사를 어필해야 하는 포인트도 슬그머니 달라졌다. 더 이상 젊고 열정이 넘친다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40년 넘는 업력을 자랑하기에는 회사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 대신 우리 회사는 퇴사율이 낮다고, 만약 당신이 입사한다면 당신 생에 마지막 직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쌍팔년도에나 했음직한 얘기를 스스럼없이 채용 면접 자리에서 꺼냈다. 여전히 나는 오만했고, 또 경솔했다.
우리는 100년 기업으로 간다.
소원하는 바를 종이에 적어서 아침저녁으로 반복해서 말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랜만에 지갑 속에 꼬깃꼬깃 접어 놓았던 종이를 펼쳐 본다. 호기롭게 써 내려간 다짐이 먹먹한 민망함으로 다가온다. 흐릿해진 문장 위로 유독 '우리'라는 단어가 굵은 글씨로 보인다. 벅벅 손을 문질러 지워 본다. 거뭇하게 번진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