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by 방재원

무척이나 뜨거웠던 그 해 여름 무더운 나날을 압구정에 위치한 특목고 대비 시험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매달 시험을 봤고 일등부터 백 등까지 열 명씩 잘라서 반을 나누고 학원 벽면에 커다란 대자보로 붙여놓았다.


공부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게 없었던 시절. 일등반과 이등반을 오르내리면서 압박이 없진 않았지만 성취감이 주는 희열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여학생을 짝사랑하기도 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느낌>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혼자 센티해졌다. 늦은 저녁 학원 버스 안에서 이승환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흥얼거리며 출렁이는 마음을 단속했다. 그땐 미처 몰랐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는 걸.


나는 D 외고로, 그녀는 H 외고로 진학하면서 짧지만 나름 심쿵했던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녀에 대한 흩어진 마음을 주섬주섬 담는 중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붕괴되는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D 외고를 다니는 3년 내내 매일 아침 끊어진 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우회해서 통학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고등학교 일 학년 시험에서 나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등수를 확인했고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자인해야 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의 유려한 발음과 특유의 자유로움, 옆에 앉은 친구가 받아 든 전국 일등 성적표 앞에서 공부만이 유일한 자존감의 근거였던 나는 갈 길을 잃었다. 잦은 두통과 손떨림이 찾아왔고 두리번거리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회를 자주 찾았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오랜 기간 괴롭힌 불안과 강박의 출발점이.


마음 맞는 친구 세 명이 돌려가면서 써 내려간 두툼한 일기장(그중 한 명은 지금 이름이 꽤 알려진 작가가 되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야자 전까지 가슴이 터지도록 뛰고 또 뛰었던 축구시합,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던 전람회 노래에 기대어 3년의 시간을 견뎠다.


한번 움츠려든 마음은 대학과 군부대, 이후 이어진 직장 생활까지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불안한 외줄 타기를 하듯 비틀거리며 20대와 30대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왜 그때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다그쳤는지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이 난다. 힘에 부치면 줄에서 내려와 쉴 수도 있고 혹 균형을 잃어 쓰러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 것을. 그 시절에는 주저앉아 멍 때리는 나를 용납할 여유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인생은 50부터 반등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커리어와 결혼,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서 중년에 이르면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대략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멀찍이 떨어져서 판단하지 않고 나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한결 마음이 담담해 진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지점에서 굳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진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도리어 혹여라도 어지럽지 않을까, 얼마 안 남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하는 건 아닐까 미리 걱정이 앞선다.


삼십 년 전 순수하게 공부가 좋아서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 하루하루를 뿌듯함과 설렘으로 채워갔던 보석같은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가 이 땅에서 받은 혜택을 하나, 둘 돌려주어야 하는 지점에 다다랐다. 내 주변의 누군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으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리라.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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