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by 방재원

처음 모임에 참석하면 으레 자기소개를 하기 마련입니다.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곤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어차피 사업하고 있습니다 여덟 글자를 내뱉고 말 텐데 말이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던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한 번도 아버지 사업을 이어서 하고 있다고 저 자신을 소개한 적은 없습니다. 네, 제 인생 구석구석에는 낙하산이라는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의 단락마다 말미에 '그래도 넌 낙하산이니까 그럴 수 있었지'라는 구절이 괄호 쳐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언부언하다 끝나버릴 것 같아서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어서 지겨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혹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는 오랜 기간 강박불안 장애를 앓았고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생각을 떠올리고 끊임없이 붙잡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죠. 그게 십 대 후반부터니까 강박이라는 낙인은 낙하산보다 더 깊게 제 삶에 각인된 셈이네요.


이제는 지난날의 저를 덤덤하게 되돌아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내가 이 놈의 강박만 아니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못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촉수를 곤두 세우곤 했었죠. 나의 천적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시절.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33층 사무실에서 목욕탕 바닥 타일 모양의 벽돌로 쌓아 올린 3층짜리 건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기름때 냄새가 배어있는 컴컴한 복도와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 아래 놓여 있는 철제 책상.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암울해만 보이는 이 공간이 저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어 줄 줄은.


불온한 생각이 찾아오면 산적한 일거리에 나를 구겨 넣어 어두운 기운으로부터 숨을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번아웃이 되면 온종일 숲길을 걸으며 내 안의 취약함까지도 결국에는 껴안을 수 있었던 내밀한 시간들. 그래서 저는 제가 낙하산이라 불리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끔 어린 시절 즐겨보던 인생극장이라는 예능프로를 떠올리곤 합니다. 주인공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그래 결심했어! 주먹을 불끈 쥐고 이후 각각의 선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흥미롭게 전개되었죠. 만약에 저에게 아버지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이직 후 사무실에서 한 블록 떨어진 정신과 문턱을 넘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한 동료직원들과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 준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과 서로의 글을 나누고 있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근데...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저라는 인간은 뭐 하러 굳이 꺼낸 걸까요? 한 번쯤은 대나무숲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비록 맨땅에서 내가 일으킨 회사는 아니지만 내 생애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는 힘을 다해 버텨왔다는 걸. 지금 이 시간에도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께 제가 관통해 온 치열함이 뜬 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함께 발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제가 침묵해야 마땅하다는 것두요. 그럼에도 한번은 눈 질끈 감고 끄집어 내고 싶었습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춰지더라도 제가 걸어온 발자취를 아무 일 없었다는듯 쓱쓱 지워버리고 싶진 않아서요.


다른 한편으론 삼십 년 전 지하철역에서 만행을 저지른 그들과 제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저 또한 그들 못지않게 예민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오랜 시간 매몰되어 있었으니까요. 다만 저에게는 자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동아줄이 내려왔고 그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뿐인 거죠. 그래서 일까요? 그들을 마냥 비난만 할 수가 없네요. 가당치 않은 소리인줄 알지만 저는 그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낍니다.


부질없는 되새김을 그만할 때도 되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전까지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끝없는 자기 검열로 소진했던 게 후회됩니다. 우리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네요. 제가 겪은 고통에 강박이라는 딱지를 좀 더 일찍 붙일 수 있었다면 스스로를 정죄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좀 더 수월했을 텐데 말이죠. 다만 어리석었던 지난날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면 저의 잿빛 청춘도 조금은 다른 색으로 덧입힐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나를 어떻게 추억할지는 우리 각자의 몫일 테니까요.


아... 이제 숨이 가빠오네요. 바람이 얼굴을 때려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마침 제 차례가 되었네요. 기왕 이렇게 된거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힘닿는 데까지 가 보려 합니다. 하나, 둘, 셋 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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