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당근 손님들을 맞다가 하루가 다 갔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워주었던 수강생들과의 수업을 마무리하고, 짐정리를 하다 아까운 것들이 있어 당근 어플을 깔았기 때문이다. 언제든 꽃을 계속 이어갈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꽃가위, 플로럴폼, 물통 같은 꼭 필요한 몇 가지는 꽁꽁 싸매두고 ‘내일까지만 영업합니다’를 시전 했다. 독일산 토분이나 유리, 도자기로 만든 화병 등은 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초를 다투어 연락이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착순으로 오신 분께 기회를 드립니다> 하는 광고 글이나 하나 올릴걸. 당근 초보의 실수다.
입구에 늘어놓았던 소품들이 사라지니 작업실이 휑해졌다. 이삿짐 박스가 쌓인 배경으로 꽃냉장고에서 마지막으로 꺼낸 꽃들로 핸드타이를 잡아보았다.(줄기를 손에 쥐는 작업이라 그런지 업계에서는 잡는다는 표현을 쓴다.) 꽃의 가장 기본이자, 웬만한 숙련자도 썩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내놓기엔 꽤나 집중이 필요한 핸드타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잡으니 한 줄기 한 줄기가 소중했다. 이 손의 감각을 언제 또 느껴볼 수 있을지. 매끄럽기도, 거칠기도, 연약하기도, 울퉁불퉁하기도 한 저마다의 줄기가 다른 줄기들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가 얽힌 줄기들이 풀어지고 마침내 하나로 쥐어지는 순간. 들쑥날쑥하던 배열은 정교해지고, 어수선하던 꽃들은 저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를 찾는다. 어느 순간 꼭 맞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우리 같다.
계절을 앞선 봄의 꽃들로 만든 사랑스러운 핑크빛 핸드타이를 화병에 꽂아두었다. 꽃냉장고의 전원을 끄고 냉장고 안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이 꽃냉장고는 내일 이사와 함께 다른 곳으로 처분될 것이다.
하얀 스튜디오 느낌의 깨끗한 도화지 같은 꽃집이라 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5년의 짐을 정리하다 보니 별 것들이 다 나왔다. 그중에는 첫 해 첫 달 수기로 직접 썼던 검은색 두꺼운 표지의 장부가 있었다. 책머리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반가운 마음으로 오래 잠들어있던 장부를 펼쳤다. 첫날 첫 매출을 적은 다부진 글씨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허우적대며 치렀던 첫 어버이날의 카네이션 주문서들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대목이라 귀하신 용달기사님을 전담으로 모시기 어려웠던 신생 꽃집. 그런 애환을 푸념하자 연차까지 쓰고 꽃 배달을 자처했던 그가 떠올랐다. 준비한 모든 카네이션을 소진하고 넋이 나가있다가 배달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그와 하이파이브를 했던 늦은 오후. 그날 저녁은 고생한 전우 둘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런 적이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한 마음으로 모아졌던 적이.
장부를 주르르 뒤로 넘기자 사이사이에 납작하게 눌러둔 꽃들이 나왔다. 첫 해. 짧아서 못쓰는 예쁘고 아쉬운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이렇게나 많았다. 장마다 꽂힌 마른 꽃들을 보니 처음의 마음이 떠올라 순식간에 눈물이 찼다. 작은 것 하나도 애틋하고 소중했던 것들. 이제는 미련도 없이 버리게 된 지 오래인 것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일은 내일부로 끝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왜 그만둬야 할까. 그냥 하면 안 되는 걸까. 앞에 내세울만한 가장 큰 이유는 애정만으로 이 자리를 지키기엔 그의(옛 우리의) 집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리를 옮겨서 이어하면 될 일이 아닌가? 맞다. 하지만 자영업의 특성상 그렇게 되면 리셋이다. 다시 다져야 하고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한 번 해봤으니 방법은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고, 서울과 대전의 지역적인 특성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맨 땅에 헤딩을 한 번은 한다. 얼마나 아플지 잘 모르니까. 하지만 두 번은 쉽지 않다. 얼마나 아픈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이유로 주저한다는건 예전만큼 꽃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 아닌가 반문한다면.
어느 순간엔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내가 아니던 어느 겨울. 복잡한 마음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세시에 몸을 일으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는데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꽃시장을 돌면서 처음 느꼈다. 왜 꽃이 안 예쁘지.
큰일이었다. 다 예뻐 죽겠던 꽃이었는데. 정작 내가 죽을 것 같으니 어느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예쁜 것 중에서도 더 예쁜 것을 골라낼 수 없는 눈으로 어떻게 꽃을 하지? 마음이 괴로웠다. 그 날 만큼은, 좋아하던 걸 좋아하지 않게 된 상실감이 너무 큰 나머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꽃을 사서 대전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최대한 담담하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흔들리는 버스 진동 따라 몸과 마음이 떨렸다. 귀에서는 정차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살짝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다행히 꽃이 안 예뻐 보이던 건 그 날 뿐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이 순간 내게 꽃이 있어서, 내가 꽃을 만지는 일을 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꽃을 사랑한다. 그리고 더 오래 꽃을 사랑하고 싶어서 잠시 떠난다. 맨 땅에 헤딩을 두 번 다시 할 용기와 체력이 쌓이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다 다짐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사랑법을 찾으면 다르게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꽃을 사랑하지 않는 나는 아마도 내가 아닐 것이다. 맺지만 영원히 맺혀지지 않을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