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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버린 사랑 노래

by 둥둥

식탁에 앉아 홀로 저녁을 먹는데 은행으로부터 입금 안내문자가 울렸다. 그가 말한 재산 분할 금액을 채우는 마지막 액수였다. 서울에서는 전세방이라도 한 칸 구하려 들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 부동산 시세를 알려주며 그 금액으로 내가 갈 수 있는 집의 현실을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 했다. 마지막까지도 부모에게만큼은 절대로 도움을 받지 않고서.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너는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를 탐구하는 대화를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갔을 때. 작은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가엾은 어린 그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어린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누구에게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묵묵히 시간만 흘렀다.

그의 웬만한 노력만큼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이. 그가 나와 이혼하고 싶은 만큼이.


지난 주말. 그는 스키를 타러 갔다. 스키는 십여 년을 함께하는 동안 우리가 같이 해보지 않은 것들 중 하나였다. 그날 밤 숙소에서 그는 생각이 많아져 내게 연락했다. 나는 노란 스탠드불 하나를 켜둔 채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사월이는 엉덩이를 내 쪽으로 하고 두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턱을 괸 채 얕은 잠을 자는 중이었다. 평온했다. 읽고 있던 수필집의 내용이 너무도 사소하게 다정해서 더 소중한 순간.

이런 것들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그를. 나와는 사실 너무도 달랐던 그를. 이제는 나더러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하는 그를 향해 오랜 시간 잡고 있던 끈이 탁. 놓아졌다.


그는 왜인지 아무 일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초연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딱히 알고 싶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아무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이제 이 정도 미지근하겠구나 싶었다. 그의 말 어느 것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속절없을 뿐이었다. 그에게도 이런 엔딩이 닿았는지. 아마 수의 끝이 감지되었을 때 비로소 해보는 복기 같은 걸 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잃게 될 정말 중요한 것들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몇 가지 단어로 가두기엔 한없이 귀하고, 무겁고, 거룩한 것들. 쉽게 쌓을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영속적일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잃으면 회복이 불가한 것들에 대해. 갖게 되면 무엇보다도 풍요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사라지면 영영 가난해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나는 늦더라도 그가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길 바랐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길. 그래서 언젠가는 스스로 행복해지길. 내 옆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에게 건네는 마지막 사랑의 모양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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