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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l 04. 2023

우리 집의 변화

우리 엄마 이야기

엄마가 아파지고 난 후로

우리 집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대략 20년정도는 창고에

고이 세워져있던 엄마 아빠의 결혼 사진이

거실 한 가운데에 걸렸다.

그 큰 사진이 소파 바로 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뭔가 어색했다.


어색하게 거는 김에 내 사진도 걸고 싶어져서 내 돌 사진을 꺼냈다. 그건 또 어디서 찾았더라, 창고 어딘가였겠지. 아주 큰 엄마 아빠의 결혼 사진 옆에 우스꽝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내 돌사진을 걸었다.


"내 사진이 빠지면 안되지! 내가 우리 집 주인공인데!"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쓸모 없는 물건, 너무 오래된 물건, 먼지로 뒤덮힌 물건들을 몽땅 버렸다.


왠지 20년정도 살아온 오래된 집이 가벼워지는 기분에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버렸다.


"아빠 이거 버려도 돼? 엄마 이것도 버려도 돼?"


50L 종량제 봉투를 꽉꽉 채워 몇 개를 버렸다.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영어 이름은 안나인데, 이건 내 세례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집안의 유일한 천주교 신자는 나다.

내가 10살일 때 엄마는 갑자기 성당을 다니자고 나를 꼬셨다. 엄마, 아빠,그리고 내가 같이 세례를 받기로 했는데 엄마 아빠는 주중의 피곤함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중도 포기했고 나만 등떠밀려 세례를 받게 됐다.

재밌는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아파트 동 모임처럼 같은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끼리 하는 모임이 있다. 동장의 집으로 오라는 초대장이 우편함에 꽂히면, 정해진 그 날 모인다. 내 이름(안나) 앞으로 초대장이 왔길래 갔다. 모두 중년이셨고, 나만 11살이었다. 내 이름이 불리고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데 신부님이 계셨다. 둘 다 당황했다. 신부님은 머쓱해하시며 "좋아하는 과목이 뭐니..?"라고 물으셨다. 다시는 내 이름 앞으로 초대장이 오지 않았다.

또 한번은 판공성사 안내장을 전달해주러 누군가가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냐고 묻는 내 말에 "안나 할머님 계세요~?"하고 친절하게 답하셨다. 나는 현관문을 조금 열고는, "제가 안난데요....."하고 말했다. 그분은 "....성당은 나오니...?.... 부활절 계란 먹으렴..."하시며 판공성사 안내장을 영수증처럼 끼워주셨다. 판공성사 안내장도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우리 가족은 대략 15년만에 모든 식구가 미사에 참여했다. 아무것도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신이라는 존재가 이 순간만큼은 내 말을 들어줄까 싶어 두 눈을 꼭 감고 제발 우리 엄마를 낫게해달라고, 그저 지나가는 장마 같은 거라고 말해달라고 온 힘을 다해 빌었다.


미사가 끝난 후 저녁, 여동생이 내게 말했다. 미사 내내 엄마가 울었다고. 엄마는 얼마나 간절한 소원을 빌었을까. 엄마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이 모든 변화는 다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


결혼사진을 걸고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며,

"우리 결혼 사진이네. 여보 예쁜 것봐. 그런데 지금이 훨씬 예쁘다. 기억해야돼."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얼마나 눈물을 삼켰을까.


잡동사니 정리도 엄마의 생활 환경을 위한 일이었다. 아빠는 집에 먼지가 많아 엄마가 아파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던걸까. 엄마는 건강했으니까. 그동안 엄마 아빠가 둘 다 바빠서 집이 시궁창이 되어버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성당은, 말할 것도 없지.




엄마의 상태를 여동생에게 들려주던 저녁,

우리는 펑펑 울었다.


엄마 아빠가 자고 있는 맞은 편 방을 같이 쓰는 우리는

숨도 죽이고 펑펑 울었다.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버린 여동생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엄마는 "왜 이렇게 눈이 부었어~?"하고 물었다.

동생은 모기가 물렸다고 했다. 그 한겨울에.

엄마는 코를 훌쩍였다.


우리 다섯 가족 모두는 아무 일도 없던 척

고개를 돌리고 부산스럽게 바쁜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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