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속에 쌓이는 과오
별나다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튀는 행동을 많이 하거나 사고를 많이 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심성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정신질환처럼 사리 분별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의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내 선택은 늘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서는 안 고르는 선택을 하는 점이었다. 다들 그건 별로라고 할 때 나 혼자 흥미가 생겨서 몇 날 며칠을 푹 빠졌던 흥미나 관심사가 많았다.
가족, 친척과의 악감정이 심해진 계기도 이런 사연이 누적되어 감정이 터졌다고 봐야 할 거 같다. 항상 평범의 범주를 지향하는 그들에게는, 반찬 하나부터 각종 취향과 취미 등등 내 일상 하나하나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고 심지어는 괴상망측하기까지 해 보였던 거 같다. 어릴 때부터 나한테 왜 남들처럼 하지 않냐고 타박하던 말의 속내에는 제발 현실을 살아가라는 불만이 있었던 것이었다.
행동의 계기가 되는 어떤 포인트나 감정이 교차하는 사건의 양상 또한 평범한 이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정확히는 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마주치는 패턴의 양상이 남들과 달랐다고 할까. 내가 겪는 일은 거의 항상 남들의 일상에선 상상도 안 되는 일이라 어떻게 위로조차 꺼낼 수 없었던 일뿐이었다. 좋게 포장하면 참으로 다이내믹한 삶이라 부를만한 정도였지만, 직접 겪는 처지에선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정신 붙들고 버티기가 점점 버겁기만 했다.
언제부턴가 늘 새로움을 원했다. 일상은 지겹거나, 부당하거나, 칙칙하거나, 고리타분하거나 등의 부정적인 형용사가 붙을 뿐이었다. 일상적으로 마주쳐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역시 마찬가지였고, 현실을 바꿔줄 어떤 기대감을 새로운 무언가에 투영해서 보고 있었다. 현실은 해결하거나 해소되어야 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나한테는.
현실을 비판하고 실제로 회사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결과는 나 혼자의 외침이고 ‘평범한’ 이들에게 거부당할 뿐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는 일상을 방해하고 그동안 지킨 패턴을 깨트리는 불편한 무언가로 느껴지고, 생각만으로도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 이익의 측면에서 봐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움직일 명분마저 없었다. 그들에게는.
돈을 벌어서 생존을 위해야 할 때, 이런 내 모습은 서로에게 피곤할 뿐이었다. ‘평범함’을 철통같이 지켜야 하는 그들에게 그동안의 내 행적은 불안 요소와 곤란함 그 자체였다. 나는 나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위협받고 멘탈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부정적인 흐름의 연쇄에서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지켜낼 수 없고 악의 기운에 서서히 잠식당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내가 저질러온 언행이 나의 과실이 되는 셈이었다. 그 책임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들, 최종 책임자는 나 자신이었다.
새로움이 늘 이롭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아니, 체력과 정신력을 소진해 가며 깨달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질서라 부르는 것 말고도 변하면 안 되는 것들이 여러 개 있었다. 인간의 세계가 유지되기 위한 불문율처럼 작동하는 걸 애써 무시한 대가는 참으로 고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