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현재 대한민국에선 자발적 실업이 사회적 논란거리다. 특별한 이유 없이 취업을 포기하는 현상이라는데, 과연 이유가 없는 게 맞을까? 자발적이라는 표현이 외부에서 그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모든 생명체는 생존이 최우선이다. 성인이 된 다수에게 있어서 생존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근데도 서둘러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계속 미룬다면 숨겨진 뭔가가 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것들이 눈만 높다고 비하하기만 한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땀 흘려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앉아서 쉽게 돈 벌 궁리만 한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지금도 여러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수많은 숨은 노동자들의 헌신이, 주식과 가상화폐 같은 재테크 수단에 비교당하며 깎아내려지면 안 되는 건 분명하다. 그들의 헌신으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자발적 실업을 선택한 모든 이가 단순히 놀고먹기만 하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조금 더 만족스러운 근무 환경, 급여, 처우를 고집하다 보니 회사를 쉽게 고를 수가 없는 탓이 더 크다. 아직 한국에선 첫 직장이 어떠냐에 따라 이직 등의 경력관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탓에,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인생 망한다”라는 믿음 때문에 첫 회사를 빨리만 선택하기에는 위험성이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중소기업으로 들어가도 속칭 ‘하청’이라 불리는 하도급 계약의 클라이언트 회사에 의해, 갑에서 을로, 을에서 병으로 민감하고 부담스러운데 처우는 열악할 뿐인 포지션과 업무를 전가 당하면서 못 버티고 번아웃 상태로 퇴사하는 예도 상당히 많다. 모든 하도급 구조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구조적,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산업이 아니라면 사람만 채워 넣어서 일을 진행하려는 막무가내식 업무 지시가 빈번히 이루어진다. 원래 이런 거 아니냐며 버티는 사람도 꽤 있지만 - 그러니까 산업이 계속 유지되었겠지만 - 웬만한 사람은 번아웃을 겪다가 퇴사하고 만다. 그래서 사람을 계속 구할 테고.
이렇듯 비합리적인 환경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에게 이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버티고 버티다 드러낸 생존 본능이다. 최소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겉으로는 안 보이는 내면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는, 본능에 따른 의사 표현으로 봐야 맞다. 이것마저 비난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는 그대 또한 지금 숨 쉬며 살고 있고 계속 살기를 원하지 않는가? 생존이 위협받는 공포감은 인간의 근본 욕구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인데, 이것마저 부정할 텐가?
인간의 심리 앞에서 절대적으로 뭐가 맞고 틀리는지 판가름할 기준 같은 건 없기도 하고, 어떻게 정의를 내린다 해도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각자 개인의 특성과 다수의 무리 사이에서 조화가 이뤄지면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어느 쪽이든 한쪽에서 채우지 못하거나 이기심 또는 나쁘게 마음을 먹는다면 결국 조화가 깨져 누군가 이탈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이탈이라는 상황 뒤에 숨겨진 요인을 보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서로의 탓만 하게 된다. 그 상황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심리와 내면의 감정이야말로 사람이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은 자기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다. 감정의 결에 따라 얼마든지 변덕쟁이가 되고 신뢰 따위 저버리는 게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모습이다. 처음에는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쓰다가도 점점 자기 감정이 고조되고,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감정의 선이 넘어가는 순간, 인간은 자기 우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점점 빠르게 변해간다. 이런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무리에는 잡음이 생기고 혼란스러워진다.
처음에 모였을 땐 다 같이 끝까지 함께 가자면서 시작했던 각종 모임이나 공적인 회사 등에서 수많은 이탈자가 생기는 현상은 결국 그 무리의 질서가 깨졌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관리하고 개선점을 찾아서 손 보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회사같이 공적인 집단이라면 구성원들 각자에게 생존이 달린 일이라 마냥 버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직설적으로 이러다가 회사 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다고 강하게 느끼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무리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결국 공포가 현실이 되었을 때, 최소한 그렇게 확신이 드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자기 무리를 이탈해서라도 관련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한다. 어둠 속에서 같이 걷다가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혼자 저 멀리 도망치는 모습처럼, 사회적 공포에 휩싸인 개인에게 이탈은 본능적인 생존 행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