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을 부르는 직업과 근무 현장
매일 아침 수많은 이들이 눈을 비비며, 혹은 알람 소리에 놀라면서 일어나 씻고 출근길에 오른다. 요즘엔 아침 식사 같은 건 거르는 사람이 많아서 평범한 일상에 넣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돈을 벌어서 먹고살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자기 직장 혹은 주어진 일터로 집에서 나와 해가 떠 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반복되는 이 일상에 대부분 하기 싫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등의 속마음을 숨겨둔 채 아무 일 없는 듯이 평범하게 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퇴근 시간 '땡' 하자마자 서둘러 짐을 챙기며 내일 보자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간혹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혼자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우나 야근이 일상이라 지하철 끊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경우, 퇴근길 밤거리에서 많은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요즘은 평균적으로 야근하는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체감상 칼퇴근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긴 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시 퇴근이 당연해졌다. 문제는 그 '특별한' 경우이다. 직군, 업무 혹은 어떤 클라이언트,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재수 없게도 끝이 안 보이는 야근에 당첨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일례로 SI 개발자로 고객사에 파견을 가면 지금도 상당수의 프로젝트에서 야근을 강요받는다. 고객사 직원들보다 최소 30분 이상 늦게 퇴근하는 게 기본이고, 오픈이 임박하면 최종 컨펌이 날 때까지 퇴근 시각이 하염없이 밀린다. 중간에 뭐라도 문제가 터지면 해결되기 전까지는 집에 갈 엄두조차 못 내게 한다. 내가 운이 없어서 이런 케이스만 자주 겪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프리랜서 개발자들 얘기 들어보면 이 바닥은 원래 이렇다며 기대 따위 접은 지 오래인 듯하다. 그래도 9년 전에는 기본이 밤 10시 퇴근이었으니 나아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
내가 겪어본 근무 현장이 소프트웨어 개발사 혹은 전산 SI뿐이라 더 자세히 서술하지는 못하지만, 생각 외로 야근 혹은 주말 출근이 일상인 직업군이 꽤 있다. 흔히 3D 업종이라 부르며 취준생 관점에서 기피하기로 유명한 그런 직업들 말이다. 요즘에야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이미지가 좋아졌지만,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개발자는 3D 업종을 대표하는 직업군이었다. 월급을 야근, 특근 다 포함해서 실제 근무한 시간으로 나누면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도 아직 꽤 있다.
최저시급 개념이 없거나 요즘 같지 않던 옛날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야근과 주말까지도 반납하고 일한다고 해도 무조건 취업하는 게 이득이었다. 정규직과 파트타임의 시급 차이가 그만큼 컸으니 말이다. 근데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정규직을 대체할 만한 선택지가 많아졌다. 일례로 요즘은 알바만 해도 한 사업장에서 주 15시간이 넘어가면 무조건 주휴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마음만 굳게 다짐하면 알바만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돈이 되는 기술을 숙달한 자에게 작업을 의뢰하면 부르는 게 값이다. 혼자 혹은 마음이 맞는 소수끼리만 같이 일하는 형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본인이 실제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복잡한 세상에서 조직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원하는 가치인 셈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알바만 하기에는 최저시급에만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 처참하게 느껴지고, 기술도 맞는 사람이나 겨우 배우지, 현실에선 중간에 혹은 시작도 못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혼자 일하는 형태? 당연히 실제로 돈 버는 케이스는 극히 일부분이다. 현실은 거래처를 찾지 못해 갖고 있던 돈이나 까먹는 일이 빈번하다. 프리랜서도 계속 일거리를 주는 거래처가 있어야 최소한 유지라도 할 수 있다.
이런 이상과 현실에 직면하면 두뇌의 사고가 마비된다. 중간에 타협을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을 포기하고 다시 취직해 조직으로 돌아가서 거지 같은 현실을 다시 마주하느냐,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될 때까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티느냐, 단계는 있을지언정 결론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뻔뻔해지지 못하고 여리기만 한 마음 상태에서는 맨정신으로 버티기가 너무도 힘든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시작하는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나는 이런 상태로 무작정 회사를 나왔다. 그때는 “다시는 개발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다짐하고 각종 알바를 먼저 부딪쳤다. 생활비가 먼저 바닥나서 대출을 받았다가 급하게 부랴부랴 재취업을 해야 했다. 그 회사마저도 그만둔 지금, 부끄럽게도 같은 실수를 잠깐이나마 반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선 알바만으로 생활비를 벌려고 해도 현실적인 전략이 검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현실은 그야말로 한계투성이다. 기준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뜯어말리고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한다.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면 귀를 닫고 정상궤도를 강제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옛날에는 아예 그놈을 죽이거나 물리적인 처벌을 가하여 더 이상 아무 짓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요즘 시대에선 그럴 수가 없으니, 무리에서 내쫓아버리거나, 최근에 와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스스로 나가버리게끔 철저히 외면하고 고립시킨다. 회사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던, 아니면 사적인 모임이든 상관없이, 모두 혹은 그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지금 당장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당신은 눈엣가시일 뿐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특히 리더의 기준이 사실상 넘을 수 없는 한계가 되어버리는 게 시대를 막론하고 현실에서의 씁쓸한 진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