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테이셔너리 디자인

명함과 명함봉투 제작 이야기

by 이윤재

나를 위한 명함디자인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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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함 디자인


나는 레터프레스 명함을 만들기로 했다. 레터프레스는 일반 인쇄와 달리 동판을 만들어 사람이 직접 잉크를 바르고 프레스 기계를 통해 손수 만드는 방식으로, 오래된 인쇄기법 중 하나이다. 세게 찍은 박이나 형압에 비해 자연스러운 누름 효과가 매력적이다. 명함사이즈는 가장 일반적인 신용카드 사이즈(85 54)로 정하고 양면의 디자인을 통일하기로 계획했다. 양면을 통일시키면 동판을 하나만 만들어도 되기 때문에 비싼 제작비용이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명함디자인을 보면 디자이너의 실력이 보인다." 대표님이 하셨던 말씀이었다. 당시 여러 가지 명함을 디자인하며 수많은 낱말들과 숫자들의 사이 간격을 보정하고 씨름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손 보다 작은 지면에서 정보의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내 명함을 디자인하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았다.



초기 스케치에서는 로고디자인에 사용된 미소의 메타포를 명함 타이포그래피에 활용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로고를 닮은 유쾌한 서체로 미소를 상징하는 구부러진 mobile을 통해 로고와 시각적으로 연결되도록 의도했지만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왼쪽 맞춤으로 흘리거나, 중앙으로 정렬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난하면서도 세련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필요했다.


도쿄여행에서 얻은 힌트 (출처 Think of Things)


명함 최종 디자인


작년 도쿄 여행을 갔을 때 방문했던 한 카페가 있었다. 커피와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hink of Thinks로 이곳에서 명함 디자인에 대한 모티브를 얻었다. Think of Thinks는 로고 아래에 주소를 표기하고 이를 커피에 붙이는 스티커부터 디저트 패키지, 포장지 등 다양한 접점에서 키비주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특히 과하지 않은 특징을 가진 서체로 무심한 듯 타이핑되어있는 주소의 타이포그래피가 인상 깊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무던한 듯 돋보이는 디자인. 내가 찾던 세련된 디자인의 예시였다.


로고 아래 자리한 주소의 타이포그래피는 내가 구상한 명함 디자인과도 닮아있었다. Think of Thinks가 주는 무던하면서 세련된 인상을 반영하고자 명함 디자인도 양끝을 맞춰 자연스럽게 타이핑한 듯한 형태로 디자인했다. 윗공간을 잡아주는 로고와 아랫공간을 지지하는 정보의 타이포그래피로 단단한 균형을 가진 명함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위 Helvetica, 아래 Neue Haas Grotesk


서체는 Neue Haas Grotesk를 사용했다. 이 서체는 가장 중립적인 서체라 불리는 Helvetica의 본래 이름이자 전신이다. 현대적으로 다듬어져 출시된 Helvetica와 달리, 원형에 가까운 초창기 버전을 복원하여 본래 이름인 Neue Haas Grotesk로 재출시되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Helvetica보다 속공간이 조금 더 크다. 이는 명함에서 작은 글자로 인쇄되었을 때 잉크의 뭉침 현상을 덜 수 있어 가독성에 유리하다. 명료하고 중립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서체로 명함에 적합했다.


완성된 레터프레스 명함




명함 봉투 제작


회사에 20여 년 동안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을 담당하신 실장님이 계셨다. 실장님에게 기본적인 봉투의 형태를 잡는 법부터 봉투의 인상을 결정짓는 디테일한 요소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실장님은 모 대기업 회장님의 명함을 수년째 담당하여 제작하고 있었다. 미니멀한 프레임과 한문 이름 세 글자로만 이루어진 명함, 종이의 결감이 느껴지는 단정한 형태의 명함 봉투, 봉투 안쪽면에 부착되는 은은한 회색 빛의 라이너까지,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이었다.


감도 높은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을 접해온 나도 나만의 스테이셔너리를 가지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명함은 봉투까지 제작하는 일은 드물지만, 전문적인 스테이셔너리 디자이너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기성 사이즈가 아닌 규격 외로 디자인할 예정이라 역시나 제작비가 부담이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00장만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선과 곡선의 대비를 가진 명함 봉투 디자인


봉투 디자인은 로고를 완성했을 때 구상을 끝냈었다. 봉투의 접혀있는 모습은 단정하지만 열었을 때는 생동감 있는 인상이길 바랐다. 봉투의 날개는 사각형으로, 포켓은 원형으로 디자인했다. 직선이 느껴지는 접힌면과 곡선으로 디자인된 안쪽면의 대비를 통해 로고디자인의 의미가 봉투에서도 연결되도록 의도했다. 직선에는 Neutral Creater를, 미소를 닮은 곡선에는 Positive Thinker를 은유할 수 있었다. 날개에는 개발했던 YJ 초성 심볼을 넣고 엠보싱 후가공 처리를 했다.


봉투는 실제 사이즈로 만들어보며 날개와 포켓의 높이, 심볼의 크기 등을 체크하며 수정해 갔다. 손안에 존재하는 제작물은 언제나 화면 속이 아닌 실물 목업(Mock-up)이 중요하다. 특히 날개의 높이는 봉투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높이가 낮을수록 캐주얼한 인상을, 높아질수록 격식이 느껴지는 차분한 인상을 준다. 나는 단정한 인상을 위해 접었을 때의 날개 높이를 중앙보다 하단으로 맞추고, 포켓의 높이는 봉투를 열었을 때 로고만 드러나도록 디자인했다.


종이는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나는 봉투의 종이로 크레인을 사용했다. 은은한 질감과 약간의 거친 촉감이 매력적인 크레인은 그 어떤 종이보다 특별했다.(그만큼 매우 비쌌다.) 종이 색은 명함에 사용된 종이와 색을 맞추어 미색으로 골랐다. 미색은 따뜻한 인상과 더불어 아날로그한 레터프레스 명함과도 잘 어울린다.


다양한 라이너 종류 (출처 serif-sans.com)


봉투 안쪽에 부착하는 라이너는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의 깊이를 더하는 요소이다. 색지를 쓰거나 패턴이나 그림과 같은 디자인을 인쇄해 사용하기도 한다. 초기에 나는 은색의 펄지를 라이너로 사용했다. 라이너를 직접 자르고 부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봉투도 풀칠을 하지 않은 전개도 형식으로 발주했다. 라이너 사이즈에 맞게 펄지를 자르고, 봉투 안쪽면에 부착한 다음 얇은 양면테이프를 이용해서 봉투를 완성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봉투가 웨딩 청첩장처럼 고상해 보이는 문제가 발생했다. 단정한 바깥면과 대비되어 생동감 있어야 할 안쪽면이 너무 격식 있게 느껴졌다. 펄지를 포기하고 진지한 인상을 덜어내기 위해 라이너에 그래픽디자인을 넣기로 했다.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개발한 라이너 그래픽, 리소인쇄한 라이너를 자르고 봉투에 붙여서 하나하나 직접 제작했다.


내 이름의 로고와 봉투 디자인 모두 ‘곡선’이 모티프로 쓰인다. 곡선은 나의 스테이셔너리 디자인을 포괄하는 하나의 비주얼 컨셉과도 같다. 라이너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경쾌하고 비정형적인 곡선들로 읽힐 듯 말듯한 creative design을 그렸다. 이를 리소 인쇄로 제작해서 리소 특유의 아날로그한 질감과 선명한 색감을 입혔다. 색상은 스카이블루와 옅은 오렌지 색으로, 맑고 화창한 하늘의 색을 상상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날의 색을 라이너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디자인에 각기 다른 그라디언트값을 적용해서 같은 색상 아래 풍성한 질감을 가지도록 제작했다. 나만의 명함 봉투를 완성했다.


리소인쇄로 제작한 라이너, 그라디언트로 풍성한 질감을 의도했다


완성된 명함과 봉투, 나만의 스테이셔너리







명함과 봉투를 비롯한 나만의 스테이셔너리는 나의 삶의 가치관과 디자인 철학이 담긴 형태로서 다양한 것을 차별 없이 수용하고 표현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나누는 나를 담는다. 클라이언트를 위한 작업이 아닌 나를 위해 만들었던 이번 프로젝트는 한명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보았던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나를 위한 명함 디자인


1. 명함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2. 나를 표현하는 로고 디자인​

3. 나만의 스테이셔너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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